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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생각한 것

<파반느> 아임쏘리, 거짓의 말, 그 말 밖에 할 수 없는 우리

by BookSayu 2026. 3. 2.

아마도 이것은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우 비현실적인 소설입니다. 한 사람의 개인을 떠나... 단언컨대, 인류는 단 한 번도 못생긴 여자를 사랑해주지 않았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왜 라스메니나스일까?

 
라스메니나스는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56년 완성한 대작이다.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과 수수께끼같은 화풍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바로크미술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안에는 그림을 그리고있는 화가자신 외에도 귀여운 마르가리타 공주가 나온다. 몸이 유난히도 약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왕녀 마르가리타. 그녀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걱정했을까 싶기도 하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하는 점은 이 그림의 제목인 <라스메니나스>는 <시녀들>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왕녀'나 '왕의 초상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아닌 '시녀들'이라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그리고 이 그림 중앙에위치한  마르가리타와 대비를 이루는 시녀를 들여다보게한다. 마르가리타의 양옆에는 그녀를 보필하는 두명의 시녀가 있고 그녀가 키우는 개의 뒤편에는 시녀라고 하기엔 다소 장식적인 드레스를 입은 시녀가 있다. 그녀는 머리를 산발하고 있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 소설은 이 시녀를 위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주인공이 얼마나 미남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상대는 못생긴 여자이다. 이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추함'은 사랑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고마움인가. 나를 사랑해도 나는 사그것을 거부할 여지가 없는건가. 나에게 오는 관심과 사랑은 희소하기에 고 저항없이 빋아들이는 것이 이 서사의 슬픔이다.
 

그녀를 생각한다. 만날 수 없으므로 죽은, 나의 왕녀를 생각한다. 실은 죽은 지 오래였던 나를, 돌이켜본다. 내게 남은 건 과연 무엇일까. 과연 이 글을 나는 끝까지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은막의 스타로 살기위해 엄마와 자신을 내버린 아버지를 잊기위해 사는 주인공은 뿌리가 없다. 그는 인디언을 떠올린다. 말을 타고 달리는 인디언.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바라본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영혼이 오길 기다린다지만 영혼은 인디언에게 필요하지만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수도 있다. 날렵하고 뽀얀 아버지 옆에 어울리지 않는 박색의 펑퍼짐한 엄마. 작가는 숨겨지고 가려진 느낌으로 살았을 어머니를 위로한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이 무색하게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때로 생각한다. 한 장의 얇은 슬라이스 같은 긍정과 부정, 긍정과... 부정으로 자신의 내면을 도배해갔을 한 여자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그대로 무너졌고, 그래서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해버렸다. 쇠약해진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순 있었지만, 증발해버린 영혼의 부피는 어떤 약으로도 복구가 되지 않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을지로에 가족들이 모두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은 아빠를 기억한다.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한 인간이었다."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해왔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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