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안의 갈망을 억제하는 자기기만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영원한 삶에 대한 지독한 집착으로 인해 우리의 감정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간다.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작가, 그런 화가가 바라본 대상을 표현한 결과 속에서 우리는 그의 감저과 생각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진실한 감정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인간다움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인간적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박신양
박신양의 <제4의 벽>을 보고왔다. 배우로 더 익숙한 그지만, 이번 세종문화회관 전시를 통해 화가로서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었다. 시작부터 조금 정돈되지 않은 느낌은 의도된 것이리라.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다녀왔다. 오스트리아의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를 떠올리게하는 초상화는 박신양이 자신의 오랜 친구 키릴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그친구의 천진난만하고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었을까. 그림에서 따뜻함과 오랜 친구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장난스러움이 묻어난다. 이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어서 예약도 하고 찾아간 전시장은 전시준비로 한창이었다 세종문화회관은 그 공간의 특성상 매우매우 넓고 벽이 많아 한사람의 화가가 그것을 채운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한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번 전시를 미술전시가 아닌 '한국 최초 연극적 전시' 라고 이름 지은 것 또한 넓은 공간에 대한 부담을 다른 요소로라도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온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중간중간에 피에로 분장을 할 여러명의 광대들이 그림앞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어떠한 행위들을 하고 걸어다니며 서로 모여있고 흩어져 있는데, 이것이 상징하는 바를 생각해봤다. 연기자로서 유명한 한 사람이 화가로 첫 전시회를 크게 할 때 느껴지는 부담감, 자신은 광대로서 존재했다는 아이디어를 피에로를 통해 분신적 자아로 표현한 것일까. 생각해봤다.
실제로 박신양씨가 여기저기 다니며 전시회의 여러부분을 챙기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연기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아래의 그림 하나를 보기위해 이 전시회를 갔지만, 생각보다 공간은 너무나 컸고 그 공간에 대한 부담은 다양한 요소로 채워놓았고 오히려 그런것들이 그림에 대한 감상을 조금 흐트려 놓았다. 보통 전시장은 조용히 감상을 하는데 이번 전시장은 커다랑 스피커가 여기저기 설치되어있었고,
굉장히 큰 노래가 전시장을 장악, 그야말로 장악했다. 같이 전시를 본 친구는 이 음악이 이 전시와 그림 모든 컨셉에 아주 잘 어우러져서 놀랐다고 했다. 심지어 그 친구가 싫어하는 장르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말하려고하는 진심과 열정이 담긴 노래가 그림의 전달력을 키웠다고도 했다.
결국 이 전시는 이 깨끗하고 안전한 억제하는 이 세상에 내놓은 작가의 표효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만 좀 그렇게 해~라며 우리모두 예술을 해보자!는 느낌으로 자신의 존재를 연극적으로 풀어낸 하나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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