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창비학당에서 3부작으로 진행된 정희진의 강연에 다녀왔다. 그녀의 글, 그녀의 생각과 이미 연결된 사람들이 모여 듣는 자리에서 말하기의 '기술적' 유려함은 필요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에 처음에는 놀랐고 그 다음에는 안도했다. 그리고 다시 읽은 그녀의 책이 그녀의 말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5편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는 현재 시점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다.
내 시점 : 잡다한 분야를 아우를 일이 없다. 이것저것 헤맨 경험이 많다.
새로운 지식, 나와 지구를 살리는 지식을 생산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 융합 글쓰기는 그중 하나다. 융합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가치관, 연결 능력이다. 평화학, 여성학, 환경학은 하나의 학문 분과가 아니라 가치관이다. '정의로운'가치에 맞지 않는 융합이라면, 자본주의의 양극화와 지구 파괴에 쓰일 융합이라면, 모든 정보를 끌어모으는 박식한 누더기 공부가 융합이라면, 그런 융합이 왜 필요한가. 무조건적인 융합은 바람직 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본문 11쪽
정희진은 그녀의 강연에서 온전한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것은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이미 강자에 의해 설계된 언어로는 서로 같은 위치에서 대화하는 것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책에서 처럼 보이지 않는 '이미 배제된(foreclosure)'영역이 있고 내가 지금 뭘 모르는지 우리가 무엇때문에 소통이 안되는지를 모르기때문에 불가능하다. 강자에게 모욕을 당해도 자신을 보호할 언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강자가 자신을 약자라고 칭하며 '엉뚱한 대립구도'를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정희진을 지적한다. 현대에 뜨고 있는 학제간의 융합도 좀더 신중히 다루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단순한 합일이 아닌 어떻게 얼마나 어떤것들을 융합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융합은 몸의 환골탈태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호소할 때의 '뼈를 깎는 아픔'이 이것이다. 이런 어려움 없는 어정쩡한 변환에 그친다면 그것은 글쓰기의 두려움 때문이다. 독자와 소통하지 못하고 고립과 자기 검열과 자절에 시달릴 때, 윤리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글을 불태워야 마땅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쓴 글을 버리지 못하고 사회와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된다면? 내가 늘 꾸는 악몽이다.-본문 19쪽
인상적이었던 어떤 사람과의 대화, 자신은 성공한 여성으로 중견기업의 중역에 자가로 아파트도 가지고 있고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기에 자시는 보수 정당에서 탐낼 만한 신예라고 했다. 그 때까지 나 자신의 위치를 그렇게 객관적으로 본 적이 없어서 새롭기도 했고 자신의 위치와 당파성(partiality)를 잘 파악하
는 것도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진을 앞서 소개된 고미숙과 마찬가지로 '자아'를 설정하는 것이 골치 아픈 문명의 산물이라고 했다. 외로움도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에서 오며 인생이 연속적이지도 일과적이지도 않아 인과 관계로는 설명이 어려우며 원래가 고통인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말이 칼이되어 사람을 공격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특히 듣는사람으로 하여금 반응하게 함으로서(반응이라는 부채감이 따른다고) 피곤함과 더불어 트라우마를 일으키기도 한다.
"듣는 이는 자신이 해결사라는 착각과 부담 때문에 불가능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말하는 이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착취하는 자의 언어로 말한다. - 욕망하는 자와 해방되는 자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이 부분인것 같다. 우리는 착취당하면서 동시에 열광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잘 정리되어있다. 2021년 대기업 부회장이 구속되자 기도하며 울부짖은 사람에 대한 일화와 고실업과 노동의욕이 상실된 사회, 그리고 기후위기 이런 것에 지친사람들은 근본적인 원인과 구조적 시스템의 개선을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다. 정보기술 산업으로 근로소득으로 불가능한 절대적인 부를 축적한 이들을 찬양하고 욕망한다.
이 책에서 인용된 미국의 시인 오드리 로드의 말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아버지(master)의 연장으로 아버지의 집을 부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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