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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생각한 것

<죄와벌>과 <이레셔널맨>,악인은 없어져도 되는가?

by BookSayu 2026. 2. 28.
슈팽글러 판사를 죽인다는 게 날 흥분시켰다. 실제 행동으로 옮겨 세상을 지옥같이 만드는 해충 같은 놈을 제거하고 이 여자를 돕는다는 생각 말이다 완전 살인을 한다는 창조적인 도전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위험성이 높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 줬다.(00:31:05) -이레셔널맨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는 노파를 벌레로 간주하고 그녀를 살해함으로써 정의를 실현시키고자 한다. 비로소 이 영화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을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이레셔널맨>은 이성적인 철학과 교수 에이브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제 우리는 에이브의 무기력함과 생동감의 원형을 찾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은 ‘벌레 같은 인간’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자 범죄자 라스콜리니코프(로쟈)의 심리를 파헤치기도 하고, 종교적인 측면에서 소냐를 통해 로쟈의 부활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관계, 범죄의 이유, 도덕적 사회적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한 것들을 두루두루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밑바탕에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생각이자 신념이 깔려있다. 주인공 로쟈는 벌레 같은 인간을 없앰으로 인해서 사회를, 주변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에이브 역시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는 판사를 벌레로 규정하고 이를 제거함으로 인해서 밝은 사회를 실현시키고자 꿈꾼다. 그렇다면 이제 에이브를 도스토옙스키적인 인물, 로쟈의 연상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디 앨런 <이레셔널맨>의 내레이션 연구, 김동호, 연세대학교

 

이레셔널 맨에서 주인공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교수이다. 그는 삶의 의미를 잃었으며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그의 말대로 '정서적으로 죽음의 문턱에 가 있었음에도 평판이 좋은' 교수이다. 그는 불안정한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다가 짐승만도못한 판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판사를 죽이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 이후로 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삶의 생동감과 환희를 느끼게 되고 계획한 그 일을 무사히 완수한다. 하지만 여자친구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여자친구를 살해할 결심을 한다. 

 

라스콜리니 코프는 벌레만도 못한 노파를 죽이는 것이 모든 이에게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실행한다. 그 이후 소냐를 통해 구원을 얻고 자수를 선택한다. 

 

두개의 플롯에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악인을 제거하는 일은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이 두 작품의 공통된 철학적 질문일 것이다. 죽어야 마땅한 사람을 어차피 삶의 의미가 거세된 누군가가 죽이는 것은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유익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전개되는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 가는 것은 악인이 죽은 후 삶의 의미를 찾게 된 주인공들에 의해서이다. 악인을 제거한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얻게 되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해 얻어진 공적인 그리고 사적인 이득은 그들 자신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은 결과론적으로 숭고하고 의미 있는 일로 승화시키려 한다. 과연 그래도 되는가. 벌레만도 못한 사람은 죽어도 되는가. 죽여도 되는가. 어차피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사람들이 악인을 죽인다면 사회적으로 의미가 희박한 2인이 제거되며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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