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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생각한 것

<연애의 시대> 해방 이후 우리는 과연 자유한가

by BookSayu 2026. 1. 18.
성의 해방은 성이 얼만큼 표현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다시 말해 삶의 역동성과 어떻게 관계맺는가에 달려 있다. 성이 아무리 흘러넘친다 해도 그것이 단지 쾌락으로, 그래서 음험한 어둠으로 영토화되는 한, 삶에는 어떤 능동적 힘도 투여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채, 성을 은밀하게 즐길 수 있는 기회만 증식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연애의 시대 -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02>, 고미숙 

 

어떤 사람의 글을 읽기가 아까워서 한줄 한줄 음미하면서 읽어본 적이 있다면, 고미숙 선생님의 책을 읽은 내 마음이 그와 같다고 전하고 싶다. 고미숙 선생님을 처음 봤던 건, <몸과 인문학>이라는 책을 발간하셨던 10여년 전이었던 것 같다. 내 머리와 생각이 가슴이 그토록 자유하고 답답한 끈을 풀어헤치고 첫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 그 뒤고 선생님의 책을 뒤져읽었고 감이당의 수업을 찾아들었고, 결국 사통팔달을 위해 내 사주를 탐구하는 시기를 지나왔다. 또 많은 시간이 지나 나 스스로 묶이는 시간을 살고 있지만, 이전과 나는, 확실히 다르다. 

 

우연히 만난 고미숙선생님의 근대성 3부작 중 2권인 <연애의 시대>를 읽었다. 이토록 여성'성'에 대해 쉬원~하게(시원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리고 담백하게 표현한 글이 있었던가. 나는 이런 글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것들이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생각도 해본적이 없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 우리나라에 '자유연애'라는게 시작된 것이 언제일가? 그래 그럴듯하다. 

 

선생님 수업을 듣던 30대의 어느 날, 내가 어떤 어리석은 질문을 패기롭고 무식하게 던졌었다. 지금은 사실 생각도 안나지만 그때는 누구라도 나보다 현명해 보이는 사람에게 질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아마도 '사랑'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름답게 누군가를 사랑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 내 스스로를 묶은 내 안에 사랑에 그야말로 질릴대로 질린 시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끔직한 사랑에서 어떻게 자유할 수 있나 이런 류의 질문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 그런 개념이 있었을 것 같냐. 춘향이와 이몽룡이 사랑을 했을 것 같냐. 동양에서는 행복과 사랑이라는 관념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이란 것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한다면 그나마 평안 정도 되려나? 사랑이라는 것은 서양에서 넘어온 성욕과 환희의 에너지를 말하는 것일 뿐.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 연애의 실체가 과연 어떤것이라고 생각하나. 이런식으로 반문을 하셔서. 얼얼하게 집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연애의 시대는 이런 고미숙 선생님의 생각이 그대로 잘 정리되어있는 글이다. 선생님의 글은 생동감이 있다. 그 때 들었던 그 육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말하는 것처럼 글을 쓰기 원한다면 딱 그런 글이다. 

 

욕망을 오로지 연애감정으로 흡인해 버린 것, 근대의 성적 판타지는 이 점에서도 참, 문제적이다. 무의식의 판타지에는 무수히 많은 욕망들이 흘러넘친다. 성욕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근대에 들면, 성욕이 모든 욕망의 중심을 차지해 버린다. 연애를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불구자들이 된 것이다. <연애의 시대 -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02>, 고미숙 

 

이 책에서는 여성이 국민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소위 지도층에 의해 설계된 여성에게 부여할 사랑에 대한 의무, 계몽과 교육을 빙자한 새로운 구조속으로의 속박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꼭 여성이 아니라도 여러가지 환상으로 꾸며진 사랑이라는 욕망의 배치가 그토록 개방적이고 자유한 것 같지만 왜 이리도 구속적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여전히 성담론은 음지화 되어있고 무겁고 억압되어있는지 오히려 1890년대에 독립신문에 실린 서구 유학파 출신의 계몽주의자들의 논설과 <혈의 누>에 나온 자유연애가 더 자유하게 느껴지는 것은 흥미롭다. 

 

성이 범람할수록, 또 멜로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사랑의 찬가가 울려퍼지면 퍼질수록 욕망은 더한층 왜소해지고, 삶은 수동화되어 간다. 사랑과 성에 대해 많이 말해지면 질수록 사랑하는 능력, 오르가슴을 느끼는 능력은 점점 더 하강하는 이 지독한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연애의 시대 -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02>, 고미숙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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