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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기록

존재의 해체와 불완전한 재구성, <대부>의 케이 아담스와 <블루재스민>의 재스민의 세계

by BookSayu 2025. 10. 23.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지'로 유명한 <대부>를 1,2,3편 몰아보았다. 대학시절 주변에 있는 영화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최고라고 입모아 이야기했지만, 나는 정작 이영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 중절모와 총질과 거친 장면들은 내가 선호하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나이가 훌쩍 들어 보니 왠만한 것들도 좀 보게 되고, 요새는 워낙 처절하게 잔인한 장면들이 영화에 많이 나오다보니 내 내면도 같이 독해지고 잔인해진 건지 대부의 유명한 그 장면들이 오히려 미학적으로 다가왔다. 계승되어지는 폭력의 역사속에서 운명의 부름을 거부하지 못하는 남자, 가정을 중요시여겨 잔혹한 악업을 이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아이들만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중적인 남자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환호했다. 악업으로 이룬 풍요로움도 어느시대의 귀족 못지 않은 우아함이 넘치지만 왠지 모를 위태로운 음산한 무드가 영화전반을 지배한다.

대부1 리마스터링 2025

 

재미있는 것은 20대 대학생으로 본 것이 아니라 40 중반을 넘어가는 애키우는 엄마, 남편과 같이 늙어가는 아내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이 영화속에 여성인물중 여동생 '코니'와 마이클의 부인인 '케이'에 대해 오래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글은 이 영화속 인물인 마이클 콜리오네의 아내 '케이 아담스'와 우디알렌의 2013년 작 블루재스민의 재스민 프렌치를 비교하면서 써보았다. 이런 작업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블루재스민 2013

 

 

결혼을 기점으로 존재의 전환? 존재의 기반이 이동되는 여성


<대부>의 케이 아담스와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은 서로 다른 시대의 인물이지만, 두 사람의 삶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케이아담스는 마피아보스의 아내로, 재스민은 경제사범의 아내이다. 둘 다 범죄자의 아내로서 남성 중심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며, 선생님이었던 케이는 아이를 키우며 출입이 제한된 대저택에서 살고있으며 재스민은 남편과 함께 공모를 하는 사람들과 남편중심으로 관계를 이어가며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지워간다. 설렘과 희망으로 출발한 결혼이 어느새 존재의 근원이 되어버린뒤, 그 기반이 사라지자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대부1 에서의 케이 아담스


케이 아담스는 처음부터 마피아 가문과 거리를 두려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마이클이 점점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자, 그녀는 그 폭력의 세계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케이는 남편의 세계를 거부하며 셋째 아이를 지우는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나 복수가 아니라, 폭력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선언이다. 이 결정은 케이의 존재가 남편과 가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는 순간이자, 동시에 자신이 ‘누구로 살아야 하는가’를 새로 묻는 계기다. 하지만 그 해방의 방향은 완전하지 않다. 마이클에게서 벗어난 뒤, 케이는 다른 남성과 재혼하며 또 다른 가정을 꾸린다. 새로운 삶처럼 보이지만, 결국 또 다른 남성의 세계로 편입된 셈이다. 그녀의 재구성은 독립이 아니라 다른세계로의 편입에 해당한다. 

 

대부3에서의 케이아담스 재혼한 남편과 함꼐 파티에 참석한다 @대부3

 

 

재스민의 경우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궤적을 따른다. 남편의 범죄가 드러나며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부가 사라지자 자신의 존재의 기반이 붕괴된다. 앞선 대부에서의 케이와는 다르게 존재의 완전한 상실,붕괴가 이루어진다. 상류사회에서 추락한 그녀는 자신때문에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 동생의 집으로 찾아간다. 재스민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과거의 화려했던 삶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또다시 부유한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 욕망은 재건이 아니라 반복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재기의 방식은 여전히 남성의 인정과 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남편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그녀는 다른 남자의 세계로 편입되려 애쓰며, 그렇게 또 한 번 자아를 타인의 권력에 의탁한다. 결국 그녀의 재구성은 실패하고, 남은 것은 환상 속의 자신뿐이다.

 

 

재스민은 영향력있는 정치인을 유혹하여 재기를 꿈꾼다 @블루재스민

 

권력과 무력감의 서사, 가부장적 세계에서 여성의 생존 전략


케이와 재스민 모두 남편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지만, 그 이후의 삶은 스스로 구축한 세계가 아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에 속하려 애쓰지만, 그 질서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사회 안에서 존재한다. 케이는 현실을 직면하며 떠났고, 재스민은 현실을 외면하며 남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진정한 독립에 이르지 못한다. 케이의 경우 진정한 독립에 이르렀는지 알수없을 정도로 이후의 삶에대한 묘사는 거의 없지만 대부3편에서 재혼한 남편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고 연민의 정으로 마이클을 대한다. 

 

재스민의 경우 남편의 범죄에 묵인하거나 부인하거나 동조하는 행동을 통해 존재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여성의 비극이 아니라, 자아가 타인의 세계 속에서 정의되는 사회의 초상을 드러낸다. 남성의 시선과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는, 그 기반이 무너질 때 다시 자신을 세울 언어를 잃는다. 케이와 재스민은 각자의 방식으로 재구성을 시도하지만, 결국 완전한 해방에 닿지 못한 채 또 다른 세계의 일부로 머무른다. 그들의 서사는 묻는다. “남성의 세계가 무너진 자리에, 여성은 스스로의 세계를 세울 수 있는가?”

 

두 인물 모두 남편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점에서는 자율성을 회복한 듯 보이지만 그 방식이 여전히 타인의 삶에 옮겨가거나 그 세계의 영향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불완전함을 보여 한계를 드러낸다. 다만 시대적인 특성을 고려했을때 <대부2>에서 케이가 자신의 결정을 주체적으로 세우며 자발적으로 세계를 벗어나는 방식은 매우 주체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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