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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기록

<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전시작품 사전학습 포인트

by 지패뉴 2025. 10. 10.

오랑주리 미술관은 튀일리 정원 안에 자리한 작은 규모의 미술관으로, 과거 오렌지를 재배하던 식물원(오랑주리)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식물원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답게 자연 채광이 뛰어나며, 이러한 밝고 부드러운 빛은 인상파 회화 작품 전시에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이곳은 특히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Water Lilies) 중 가장 대형 규모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말년의 모네가 직접 전시 공간을 기획·제작해 1927년에 완성된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네의 작품보다는 폴 세잔(Paul Cézanne)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작품이 중심적으로 소개되었다. 대표적인 전시작으로는 르누아르의 명작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1892)이 있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초록색 병에 꽂힌 부케 정물화였다. 이 작품은 세밀한 색감과 조화로운 구성이 돋보여, 오랑주리 미술관의 고요하고 밝은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장미꽃을 꽂은 금발여인(Blonde à la rose)>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중 <장미꽃을 꽂은 금발여인(Blonde à la rose)>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의 작품이다. 르누아르의 작품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그는 항상 아름답고 행복한 인물들을 그리는데에 집중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말년의 그의 사진을 보면 놀라움을 감출수가 없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뒤틀려 보고있는 사람조차 그 고통을 느낄수가 있다. 그런 고통을 이겨낸 아름다움과 환희의 표현이란! 예술은 정말 좌절과 절망, 우울을 뚫고 나오는 한송이 꽃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장 르누아르 1905년 오랑주리 박물관

 

르누아르는 가족의 일상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그는 셋째 아들 클로드(코코로 알려짐)가 작은 납 병정들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재빨리 스케치한 것이다. 불분명한 배경은 굵은 붓놀림으로, 테이블과 장난감들은 대략적으로 스케치한 반면, 화가의 모든 관심은 아이의 얼굴과 머리카락에 집중되어 있었다. 클로드는 형처럼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르누아르는 아들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기를 좋아했는데, 아마도 충격과 낙상으로 인한 부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주로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머리가 금빛이었다"라고 말하곤 했다. -오랑주리미술관

 

광대옷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 1909 오랑주리 박물관

 

 

르누아르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아이들에게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도록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여덟 살쯤 된 어린 클로드는 이 붉은 광대 의상을 입고 따끔거리고 간지러운 스타킹을 신어야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여러번에 걸쳐서 이 그림을 그려야 했다고 한다. 클로드는 마지 못해서 모델이 되어 주었지만 나중에는 유화 한 상자와 기차 세트를 받는 대가로 잠시 스타킹을 신는 것으로 협상했다고 한다. 그림의 크기, 궁전을 연상시키는 대리석 기둥이 있는 배경, 그리고 아이의 전신 초상화를 선택한 것은 르누아르가 아들의 의례적인 초상화를 그려서 특히 벨라스케스와 같은 위대한 거장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싶어 했음을 보여준다. -오랑주리미술관

 

르누아르(1841-1919)는 대표적인 인상주의 작가로 인물을 통해 특히 여인의 육체를 통해 자연에서 오는 빛을 표현했다. 풍만한 여인들의 신체와 얼굴에서 오는 행복감. 눈매에서 흘러나오는 미소와 뽀얀 우유빛 살결을 외설적이지 않게 우아하게 묘사하는 마법을 부린다. 르누아르는 중년이후부터 류머티스성 관절염의 악화로 심한 통증으로 휴양을 하며 남프랑스에서 생활을 한다. 생이 끝날때까지 살았던 그곳에서 관절염과 사투하면서도 그의 그림은 더욱 무르익어 간다. 말년에 그는 지팡이없이는 걸을수 없고 손발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만 휠체워에서 끈으로 붓을 손에 묶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꽃다발 1901년 오랑주리 미술관

 

 

르누아르의 아내 알린 샤리고(1859-1915)도 꽃다발을 좋아하여 집의 여러곳에 장식을 해 두었다고 한다. 붓을 깨끗이 씻어 유약을 바른 점토 항아리에 담는 것까지, 가판대에서 발견한 예쁜 항아리에 꽃을 직접 꽂는 것까지 르누아르는 그 변함없는 취향에 감동하여 "아내가 꽃다발을 준비하면, 내가 할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이 녹색 항아리에서 별 모양의 꽃다발이 솟아나는데, 양귀비와 장미 등 다양한 꽃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꽃은 서로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색채는 강렬하고 색조는 따뜻하다. 꽃병의 녹색 톤은 녹색 식물에 반사되어 파란색 배경과 대조를 이룬다. 빨간색과 노란색 꽃은 오른쪽의 매우 옅은 장미에 의해 완화되지만, 꽃병이 놓인 가구의 갈색은 더욱 돋보인다
*르누아르의 이 작품과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1860년대와 1870년대에 그린 정물화 사이에도 유사점이 있다.

 

르누아르의 복숭아 그림과 세잔의 사과그림을 대비적으로 걸어놓은 부분도 표현법의 차이를 느낄수 있는 전시 포인트가 되었다. 폴세잔은 후기인상주의 대표적인 작가로 미술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에 속한다. 대부분 이부분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의 사과그림을 보면 당시로서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에까지 이르러 시각화 하려는 그의 치밀하게 계산된 혁신적 관점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외적으로 보이는 물리적 시각으로서의 정물화를 넘어 '관점'과 내면을 투영시켜 색채와 선을 정교하게 겹합시키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폴 세잔 <붉은 바위> 1895-1900년 오랑주리 박물관

 

 폴 세잔은 자신의 그림에 형태, 원근법, 구조라는 새로운 시각 언어를 도입했다. 1895  년경에 그려진 <붉은 바위 >는 세잔의 성숙기를 보여주는 걸작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작품은 이러한 부흥을 보여주는 동시에 화가로서의 삶에서 독보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엑상프로방스 근처 비베뮈 채석장의 황량한 풍경은 이 놀라운 구도의 주제가 되었으며, 세잔에게 1895년에서 1904년 사이에 여러 차례 영감을 주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주황색 바위들 사이에서 돋보이도록 십자형 해칭으로 칠해진 나무 조각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 위에는 푸른 하늘이 있다. 전통적인 원근법은 여기서 사라진 듯하며, 구도 오른쪽 상단에 거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모습을 한 바위가 끼어들어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오랑주리미술관

 

폴 세잔 폼과 비스킷 1880 오랑주리 박물관

 

 

이 그림은 폴 세잔의 가장 눈부신 걸작 중 하나이자 그의 정물화에 대한 탁월한 기량을 상징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그림에서 세잔은 접시와 상자 위에 놓인 사과 몇 개만으로 매우 균형 잡힌 구도를 만들어냈다. 형태를 양식화하고 색을 통해 양감을 표현하려는 그의 실험은 이 그림에서 완벽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세잔은 정물화가 비주류 장르로 여겨지고 다소 소홀히 여겨지던 시기에 많은 정물화를 그렸다. 그는 정물화의 명성을 회복하고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해주겠다"고 했다. 세잔에게 이 과일의 순수한 형태는 시적인 상징이었다. 또한 이 그림은 훗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가 된 에밀 졸라(1840-1902)와의 깊은 우정을 암시하기도 한다. 졸라는 세잔에게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과를 건넨 옛 학교 친구였다.-오랑주리미술관

 

 

폴 세잔 꽃병 paillé, sucrier et pommes 1890년과 1894년 사이 오랑주리 박물관

 

이 정물화는 세잔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사물과 과일을 예상치 못한 관점에서 묘사하는 급진적인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했다. 여기서 그는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일관된 구도를 선택했으며, 모티프의 형태와 질감, 그리고 테이블과의 관계에서 모티프의 위치를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것을 거부했다. 세잔은 꽃병 오른쪽의 수직선과 오른쪽의 사선(칼자루인가?)처럼 식별하기 어려운 요소들까지 도입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꽃병의 위치를 ​​나타내는 초기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과일 접시는 세잔이 다른 여러 그림에 포함시켰다.-오랑주리미술관

 

이번 전시를 통해 세잔의 사과가 왜 그렇게 혁신적인 사과로 불리는지. 직접 확인해볼수 있었다. 지금이야 다양한 관점과 형태의 시각적 조형들이 넘쳐나지만 시대상을 감안했을때, 당시 세잔의 사과그림은 대중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주었으리라 생각했다. 구도와 원근법을 무시하고 표면안에 색감은 통해 형태를 분할한 그의 과감한 실험적 형태의 정물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그 실제 반응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 

 

이번 전시의 실제감상 포인트는 르누아르의 우아한 색채감과 세잔의 사과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랑주리미술관 사이트 

https://billetterie.musee-orangerie.fr/en-GB/products-orangerie?famille=2019043555100408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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