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가득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 없다를 보았다. 리처드 스타크의 <액스>가 원작이다. 소설 <액스>는 1997년 발간된 책으로 1990년대 산업자동화에 의해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소설의 플롯이 2025년 지금에도 큰 공감을 블러일으키는 이유는 산업자동화에 의한 변화보다 더 무시무시한 4차혁명에 의해 대규모 인력감축이 일어나고 있는 현시대 한국, 그리고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 - <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우선 제목 왜 액스, 왜 어쩔수가 없다인가.
액스는 영어로 도끼라는 뜻이지만 정리해고라는 이중적의미를 담는다. 영화 초반에 이병헌이 미국제지회사의 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미국에서는 해고를 액스라고 한다지요? 한국에서는 모가지라고 합니다"라며 목에 선을 긋는 제스쳐를 취한다. 그럼 영화의 제목은 왜 다를까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는 무차별로 잘려나가는 삼림채벌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잘려나가는 나무들은 어제심어진 것들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20년 많게는 100년이 넘게 자라온 나무들이 겠지만 벌채트럭에 의해 마구잡이고 쓰러져간다. 이런 나무들은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어쩔수가 없다>인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어쩔수 없이 잘려나갈수 밖에 없는 운명앞에 대기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노동자의 가족들을 보여준다.
"내가 몇번을 말했어!!문제는 실직이 아니라 실직을 대하는 네 자세(태도)라고!!"
극중에서 구범모(이성민)의 부인 이아라(염혜란)은 실직앞에 무너진 남편에게 소리지른다. 이 대사는 마치 이 사회가 우리에게 윽박을 지르는 듯 하다. "세상은 변하고 있어!! 너는 이 상황을 빨리 인정하고 이 변화에 준비하라고 내가 몇 번을 이야기하니? 우리는 너를 자를 수 밖에 없다는 말이야!!"
영화의 초반 아름다운 저택에 사는 가족을 비추는 카메라. 이병헌은 회사에서 배달된 장어를 구워먹으며 자신의 인생을 즐긴다. "다 이루었다!" 감탄하는 주인공 만수는 자신의 노동으로 빚어낸 가족의 행복에 충만감을 느낀다. 제지회사의 25년 경력을 가진 만수는 제지공장 '태양' 의 관리자 이다. 사람들을 관리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계에 합병된 회사에서 임원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어필하려다 좌절되는 장면에서 더이상 만수는 만수가 관리할 '사람직원'이 없음을 알게된다. 사람이 없어지면 사람을 관리할 관리인력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만수의 자기최면 "어쩔수가 없다."
자신의 완벽한 삶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아내는 치과로 일하러 나가 잘생기고 젊은 치과의사와 일을하고 아들은 즐겨보는 넷플릭스를 끊어야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막내딸과 세상과 유일한 소통의 통로인 첼로교습만은 마지막까지 사수한다. 끊임없이 치통에 시달리면서도 돈이아까워서 혹은 자신의 필요는 가장 마지막 순위가 되는 가장이기에 치료를 미룬다.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3명의 경쟁자
아이러니하게도 만수가 제거하기로 결심한 경쟁자 중에서는 종합적으로 만수보다 더 잘살고 있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첫째 가장 심정적으로 깊은 연결을 맺고 있는 구범모(이성민 분)는 아내의 불륜으로 인한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더 나은 조건으로 다른 업을 이어갈 수 있지만 선택하지 않고 그 자리에 무너져 버린다. 이것은 그 '제지업계의 관리직'이라는 직업이 그의 인생에 차지하는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언어를 통해 만수는 자신에게 이 직업에 대한 애착을 더욱 공고히 하며 자신의 계획이 '어쩔 수가 없음'을 확신한다.
두번째 희생자인 고시조는 선한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사춘기 딸을 키우는 사람으로 충분히 그에대한 연민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합한 상황이지만 만수는 스스로에게 지속적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리며 말한다. '어쩔수가 없다.' 이 행동은 자신의 행동에 합목적성을 부과하기 위한 자기최면의 행위이다. 첫번째 행위보다 두번째 행위는 매끄럽고 독립적으로 끝낼 수 있지만 증거를 남기게 된다.
세번째 희생자인 최선출은 만수에게 부러움과 호기심의 대상이다. 어떻게 그 많은 부와 멋을 지니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인간적인 연대를 맺기도 하지만 결국에 목적을 이행한다. 이 장면에서는 술이 그 매개체의 역할을 하며 계획의 가장 큰 목표를 달성하기 전 만수는 그 간 자신을 괴롭혀온 이빨을 제 손으로 뽑아내고 참아왔던 금주의 해방을 이루며 자유로워진다. 세번째의 계획은 완전함에 이른다.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뒤처리였다. 하지만 몇 년 전이었다면 이런 방법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직장에 다니며 정상적이고 변화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을 때. 그 당시, 그러니까 내가 해고를 당하기 전까지 나는 무척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이런 일에 대해서는 더 그랬다. 그때 이런 일을 당했다면 아마 법과 사회를 믿고 묵묵히 결과를 기다렸을 것이다 - <액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태양제지에서 문제지로의 이직
영화초반부터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며 면접을 다니는동안에도 자신을 비추던 태양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 만수는 제지회사의 이름이 문(아마도 달)으로 이직한다. 햇볕은 사라지고 빛은 통제된다. 유일한 사람으로서 문제지에 살아남은 그는 자신을 위해 비춰주는 통제된 조명을 받으며 일을 한다. 제지회사의 이름이 '문제지'인것은 이제부터 풀어야할 문제의 시작을 알리는것 같다.
포카혼타스와 춤추지 않는 존스미스
영화 중반 댄스파티에서 포카혼타스로 치장한 부인 미리(손예진 분)와 치과의사 오진호(유연석 분)의 댄스를 보고 질투와 상심을 느끼며 되돌아서는 만수(이병헌 분)는 포카혼타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 존스미스의 복장을 하고 있다. 포카혼타스는 원주민 추장의 딸로 1600년대 신대륙 탐험의 시대에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하러 온 존스미스와 사랑에 빠져 끝내 사랑을 고백하지만 존 스미스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여기서도 만수는 포카혼타스와 춤을 추지 않는다. 존스미스와 포카혼타스는 공존할 수 없다. 자신이 파괴하는 대상과 함께 춤을 추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 폰을 훔쳐 엄마를 구하려는 아들
아들은 엄마가 전남편 사이에서 낳았고 딸은 만수와 미리 사이에서 나온 자녀이다. 아들은 엄마를 구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훔치고 엄마몰래 담배를 피운다. 엄마인 미리는 만수와 자신의 아들이 정말로 가족으로 화합을 이루고 있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살고 있기에 아빠의 미심쩍은 현장을 목격한 아들에게 그것은 사과나무의 밑거름이 되기 위한 '돼지'거름이었다고 둘러댄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끔찍한 것들이 필요해
한 사람이 잘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을 수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통용되는 진리인 듯 느껴진다. 한 가정에서 누군가 엄청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머지 일원의 작은 재능은 인정받을 수 없다. 한사람에게 모든 자원이 투자되고 돌아오게 될 큰 보상을 꿈꾼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이다. 이 논리로 사회는 신자유주의와 경쟁지상주의를 항해해왔다.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하지만 작은 희생들이 모여 언젠가 그것이 모두의 희생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독립된 존재가 되는 딸
자폐스펙트럼은 소리에 유독 예민한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지낸다는 것은 외부와의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가 구축되고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정상적인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딸은 자신만의 언어(스케치북에 그려진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악보)를 통해 독립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그 완성된 연주를 자연으로 출력해낸다. 우리가 완전한 독립된 존재로 누군가의 희생을 밟지 않고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해서 외부로 출력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어쩔수가 없다
다시한번 아라(염혜란 분)의 대사로 돌아와 생각해보고 싶다.
그럼 우리는 이 대실직의 사태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 우리는 이것에 대비를 할 수 있나. 서로를 죽이는 어쩔수 없는 상황을 피할 수 있는가. 내 손에 쥐어진 것과 이것을 이행해야지만 살아남는 이 상황에서 나는 이것을 부인하고 전혀다른 나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가. 어쩔수 없이 밀고 들어오는 셀 수없는 벌목 탱크 앞에서 운이 좋아서 어쩌면 경쟁이 되는 고만고만한 모두를 제거하여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은 시한이 정해진 늦춰진 대기표일 뿐이 아닐까. 도저히 어쩔수가 없다.
박찬욱영화를 보는 첫번째 이유는 사진처럼 이런것을 보는 재미이다. 이런것들은 좀처럼 영화에서 보기 힘들다 취향은 엿볼수는 있지만 훔칠수는 없다. 정말 부러운 취향이다.
'책과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대를 위한 총균쇠수업>, 김정진 (4) | 2025.01.02 |
---|---|
<총,균,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제레드 다이아몬드 (3) | 2025.01.02 |
<데미안> 헤르만 헤세, 마흔넘어 읽는 데미안은..? (0) | 2025.01.02 |
<물건 이야기>The Story of stuff,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 이야기, 애니레너드 (3) | 2024.12.20 |
<절연> 소설집 무라타 사야카, 무, 엄마란 끔찍한 존재에 대하여 (8) | 2024.1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