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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고 생각한 것

<금각사> 과연 악은 가능이나 할까? -미시마 유키오

by BookSayu 2025. 12. 31.
그날이 왔다. 쇼와 25년(1950) 7월 1일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화재경보기는 오늘도 고쳐질 가망이 없었다. 
-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도쿄출신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명작, 금각사. 비틈이 없는 구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고르지 못하게 한다. 실제로 있었던 방화 사건, 자기혐오와 미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 아름다운 금각과 함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라는 사람들의 해석이 있었지만 금각사의 주지가 되려는 꿈이 무산되고 냉대를 받자 반항심에 저지른 사건으로 마무리된 소송이었다. 이런 실제 사건속에서  "미에 대한 질투"를 잡아낸 작가의 안목이 대단하다. 

 

실제로 교토에 있는 절이다. 금각사

 

#01 사람은 자신을 언제까지 포장할 수 있을까? 

 

지난 해 만났던 사람이 올해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 해에도 같은 이야기를 하면 나는 실망하고 만다. 지난해 즐겁게 나눈 대화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무르면 내년에 만나고 싶은 마음과 기대가 사그라든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처음이야기하는 것처럼 되버릴 때에는 나는 내자신이 싫어진다. 왜 그렇게 신이 나 있던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실망하는 건 너의 문제라고!!

 

한 사람을 만나서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다보면 그 사람이 말한 내용을 근거로 타자를 이해한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이해한다는 말이 평가를 하거나 판단을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을 판단할 거라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포장하게 된다. 어떤 것을 좋아라고 말할때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봐줘라는 느낌이 들어가 버린다. 

 

나는 만날때마다 금각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를 알고 있다. 그 친구의 세계를 이 금각사라는 명작이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이 금각사로 대화의 임팩트를 찍어버리는 그 흐름이 나도 모르게 이것이 아름다움을 탐하는 자의 지적유희를 알리기 위한  포장을 위한 대화의 미끼인걸까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모두들 내가 절간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햇빛이 유별나게 눈부신 곳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쓸쓸한 곶에서 태어난 약골로 말을 더듬어 좀처럼 세상에 적응이 힘든 아이이다. 나는 이런 자신의 약점이 외부세계와 자신을 가로막는 순순히 열리지 않는 '문의 자물쇠'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언어로 자신의 문을 열어 바람이 선선히 통하도록 하지만 주인공의 자물쇠는 녹슬어버려 도저히 열수없어 외부와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무언가 씻어 없앨 수 없는 열등감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은근히 선택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이 세상 어디엔가 아직 내 자신도 모르는 사명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소년은 중이 되기로 했다. 중학생 모두가 동경하는 단검과 해군학교의 제복을 뒤로한 채, 돼지처럼 자꾸 살쪄가는 고독을 숙명처럼 끌어안은 소년은 절름대며 어설픈 인생을 살아가고 그 안에서 몇몇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02 아름다운 우이코의 마지막

 

아름다운 처녀 우이코는 해군병원의 간호사가 되고 계획없이 그녀의 출근길을 막아서다 무안을 당한 소년은 그녀를 증오한다. 그 후에 우이코와 어느 탈영벙의 스토리에 대해 알게되고 그녀를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광녀가 된 우이코의 사건은 소년에게 짙은 기억으로 남는다.  노쇠해진 아버지와 교토의 금각사로 가기로 한 날 소년은 주저한다. 자신의 생각만큼 금각사가 아름답지 못할까바. 혹은 아름다워도 내가 그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까바. 아버지의 유언대로 교토 금각사의 도제가 된 주인공은 여름방학동안 잠시 금각사를 떠나 학교로 간다. 다시 돌아와 수개월 만에 보는 금각. 여전히 금각사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주인공은 금각에게 기도한다. 언제가는 그 아름다움을 내가 알게해달라고 

 

나는 자신도 모르는 곳에 이미 미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만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가 명백히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면, 나라는 존재는 미로부터 소외된 것이 된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03 분신과도 같은 쓰루카와의 이별

 

우연히 알게된 쓰루카와와의 대화에서 아버지를 잃은 주인공을 위로하는 쓰루카와에게 나는 말한다. 나는 별로 슬프지 않다고.

전쟁 중인 일본에서 금각이 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비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느껴졌다. 내심 금각이 불타기를 바랬다. 불사조처럼 영원하길 바라는 금각이 형태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이 떠돌아다니길 바랬다. 하지만 금각은 안전했고 공습에 불타지 않았다. 예전부터 여기에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으리라는 느낌으로. 또 한번의 참혹을 겪고(저지르고) 소년은 도망한다. 다시 돌아온 금각사에서 싹튼 죄의식이 훈장처럼 가슴안쪽에 매달린다. 참회하지 않는 그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자신을 변호한다.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을.

 

나의 삶에는 쓰루카와의 삶과 같은 확고한 상징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러운 것은, 그가 나와 같은 독자성 혹은 독자적인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의식을 추호도 갖지 않은 채 삶을 마쳤다는 점이었다. 그 독자성이야말로 삶의 상징성을, 즉 그의 인생이 다른 무엇인가의 비유일지도 모른다는 상징성을 박탈하고, 나아가 삶의 확대성과 연대감을 박탈하여 항상 붙어 다니는 고독을 낳게 하는 본원인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허무와도 연대감을 지니지 못했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자신에게 소중한 쓰루카와를 잃은 후 주인공은 금각사를 증오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잃었을때보다 더 애도와 고독에 잠긴 주인공은 삶에대한 초조함도 잃은채 

“언젠가 반드시 너를 지배할 테다. 두 번 다시 방해하지 못하도록 언젠가는 반드시 너를 내 것으로 만들 테다!”

 

 

#04 가시와기와의 대화

가시와기는 주인공에게 세계를 변모시키는 것은 인식뿐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관점만이 세상을 다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세계관은 이를 반박한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행동만이라는 것이다.

 

가시와기는 주인고의 세계관을 붕괴하려 한다. 미적인 것은 인간의 정신이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해방하지 않고 가두려하고 현실이 더욱 추해지며 그 간극이 인간을 파괴로 몰아 넣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작가는 생각으로 타인의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인간과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세계를 무너뜨리는 인간 중 누가 더 악인가를 질문하는 것 같다. 

 

가시와기 :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인식이라고. 알겠냐, 다른 것들은 무엇 하나 세계를 바꾸지 못해. 인식만이 세계를 불변인 채로 그대로의 상태에서 변모시키지. 

주인공 :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절대로 인식이 아니야”라고 얼떨결에 나는 고백에 가까운 위험을 무릅쓰고 반박했다. “세계를 변모시키는 건 행위야. 그것밖에 없어.

가시와기 :
미적인 것, 네가 좋아하는 미적인 것, 그건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인식에 위탁된 나머지 부분, 잉여 부분의 환영(幻影)이야. 네가 말하는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의 환영이야. 원래 그런 건 없다고도 할 수 있지. 할 수 있지만, 그 환영을 강력하게 만들고 최대한의 현실성을 부여하는 건 역시 인식이야. 인식에 있어서 미는 결코 위안이 아니거든.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더 나아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게 뭐였을까를 생각해보면 작가는 가시와기를 통해 책임 없는 인식, 행동하지 않는 허무주의적 지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게 허상이니 괴로워할 이유도 바뀌어야 할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책임이 없고 행동이 없고 변화가 없을 것이다. 미시마유키오의 연혁을 보니 아마도 그는 주인공을 감싸안기 위해서 가시와기를 말하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금각사와 함께 불타지 않은 주인공이 "살아야지"라고 이야기하는 부분도 그런 의미의 선상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른 호주머니의 담배가 손에 닿았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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