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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보는 기록

영화&책 <국보>, 인간이 보물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by BookSayu 2025. 12. 19.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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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정월, 나가사키에는 흔치 않은 큰 눈이 내렸습니다.
언덕길 바닥의 젖은 판석과 나들이용 기모노를 입은 정월 참배객의 어깨에 쌓이는 것은,
마치 무대에 흩날리는 종이 꽃가루처럼 근사한 함박눈이었습니다.
- 요시다 슈이치 <국보>

 

 

 

좀처럼 내리지 않은 눈이 내리며 시작하는 이야기. 요시다 슈이치가 2018년에 발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일본의 전통문화인 가부키의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가부키는 노래와 춤 연기 무대와 의상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우리에겐 익숙한 오페라의 특징을 가지는 일본의 전통문화이다. 남성이 여성배역을 맡는 '온나가타'의 전통을 가진다는 점과 특이한 화장법,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고 선으로 인물을 나타내는 쿠마도리 화장 외에도 시적으로 표현된 단조로운 대사를 조금 과장하듯 읊조리는 독특한 창법이 대표적이다. 에도시대 시민계급의 연극으로 서사적 성격이 짙어 대중에서 사랑을 받았던 문화의 한 분야이다. 

 

하얗게 분칠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없애는 행위이다. 그 위에 빨간 붓으로 화장을 하는 것은 배우로서의 자아를 입는 것이다. 키쿠오는 하얀색이었다. 그 뒤에 슌스케가 빨간 붓으로 분장을 그려준다. 피를 주는 느낌인 것이다. - 이상일 감독 GV(관객과의 대화)에서

 

출처 : 東宝MOVIEチャンネル 유투브채널

 

 

이 영화에서는 키쿠오라는 남자의 50년간의 생애사를 통해 가부키 문화의 흥망을 함께 표현해 낸 대작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키쿠오는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한다. 복수에 실패한 후 나가사키에서 오사카로 어릴 적 자신의 공연을 인상적으로 봤던 유명한 가부키 배우 한지로에게 찾아가 자신을 받아줄 것을 부탁한다. 한지로에게는 자신의 업인 가부키를 물려받을 슌스케라는 아들이 이미 대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한지로는 슌스케의 연습에 자극이 되는 선천적 재능의 키쿠오를 견습생으로 받아들인다. 어린 키쿠오는 자신의 마음을 다짐하듯 어린 자신의 등 뒤에 문신을 그리는데 그 문신에 대한 묘사가 원작에 나와있다. 

 

#01 수리부엉이는 은혜를 갚기위해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까?

 

출처 : 東宝MOVIEチャンネル 유투브채널

 

이때 키쿠오는 이미 자기 등에 어떤 문신을 새길지 정해두었고, 똑같은 문신을 하기로 약속한 하루에와 상의한 끝에 선택한 것이 양 날개를 넓게 펼친 수리부엉이였습니다. 참고로 키쿠오의 수리부엉이는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비단구렁이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수많은 문신 그림 중에서 수리부엉이를 고른 이유가 있습니다. 야생 조류, 그것도 맹금류라면 사람에게 길들긴커녕 난폭하게만 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 수리부엉이라는 새는 한 번 은혜를 입은 인간을 절대 잊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처를 입은 수리부엉이를 우연히 구해준 남자가 있었습니다. 집으로 데려와 상처를 치료해 주자, 목숨을 빚진 수리부엉이는 무사히 날 수 있게 된 다음 날부터 매일같이 은혜를 갚기 위해 쥐나 뱀을 남자에게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 <국보 (상) 청춘편>, 요시다 슈이치 지음

 

상처 입은 수리부엉이를 구해준 남자는 한지로를 목숨을 빚진 수리부엉이는 키쿠오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리부엉이가 은혜를 갚기 위해 물어다 준 쥐나 뱀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슌스케만이 유일한 후계대상자였다면 슌스케가 인간국보가 될 수 있었을까? 한지로의 가업을 영광스럽게 이어준 것은 키쿠오의 재능일 것이다. 그 재능을 거두어 준 것이 한지로 였기에 그가 가르친 그의 예술세계는 키쿠오에게로 가서 정절에 이르고 인간국보에 오르게 되는 것. 이것이 키쿠오가 한지로에게 바친 영광이 될 것이다. 키쿠오를 양자로 지정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당뇨로 눈이 멀게 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가문의 '백호'라는 명칭을 이어받고 자신의 이름을 키쿠오에게 물려주기로 한 장면에서 한지로의 부인은 "당신네 배우들은 정말 끔찍한 인간들이다!"라며 혀를 내두른다. 그저 예술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내주고 모든 걸 버려도 좋다는 거래를 한 키쿠오처럼 한지로 역시 자신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보다도 더 예술적 완성도에 가까이 갈 수 있는 키쿠오를 택했으며 키쿠오 역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딸을 무정하게 밀어내면서도 도달하려고 했던 예술의 열반. 이것에 일반인인 한지로의 부인은 치를 떠는 것이다.  

 

#02 자신을 삼켜버린 괴물, 아름다움

“정말 예쁜 얼굴이네.”  키쿠오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채 그 자리가 불편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 배우가 되려고 한다면 그 얼굴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거야. 언젠가 그 얼굴에 네가 잡아먹힐 테니까.
<국보  상 청춘편>, 요시다 슈이치

 

유럽 공연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가부키 장인의 6대손 만기쿠에게 인사를 하던 날 만기쿠는 영험한 기운을 키쿠에게 느낀 듯 그를 불러다 두고 그의 얼굴에 감탄한다. 그리고 그 얼굴이 너의 걸림돌이 되어 결국 잡아먹힐 것이라 예언한다. 여기서 얼굴이란 키쿠오의 재능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예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키쿠오의 예술에 대한 염원,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결국 키쿠오의 현실세계와 자아를 잠식해 가기 때문이다. 이 예술은 '괴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만기 추가 연기한 무대의 한 요 노마에(가부키 <스미다강>의 주인공으로 귀족부인이었지만 자식이 납치당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미쳐버린 여인, 결국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듣게 된 그녀는 자식의 초라한 무덤에서 오열하는 미친 여자)로 나타난다. 그의 연기를 본 키쿠오는 혼자 속삭인다 "아름다운 괴물이야!" 

 

#03 교토풍 처녀 도죠지

출처 : 東宝MOVIEチャンネル 유투브채널

 

키쿠오의 첫 무대는 고관의 아내를 모시는 시녀 중 한 명이었다. 대사도 없고 그저 서있다가 무대를 벗어나는 역할. 그다음에는 슌스케와 여장 무용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교토풍 처녀 도죠지>를 눈여겨본 '미츠토모'의 우메키 사장의 눈에 띄어 큰 극장에서 공연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미츠토모 회사의 사원으로 일하던 타케노가 나오는데 이 역할은 영화 전체의 관찰자로 자리 잡는다. 영화일을 하려다 가부키 담당이 되어 의욕을 상실한 젊은 남자는 가부키 따위는 너무 따분해서 자장가보다 잠이 잘 온다고 말했다 하여 키쿠오와 대치한다. 키쿠오에게 그가 남긴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가부키 같은 건, 그냥 세습이잖아? 지금은 나란히 서 있지만, 마지막엔 너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인생을 끝내게 될 거다.” 문외한에 냉소주의자가 하는 말로 치부하면 좋았을 테지만, 어째서인지 타고난 야쿠자의 피가 키쿠오의 몸을 발끈하게 합니다.
<국보 >, 요시다 슈이치

 

#04 너의 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키쿠오에게는 빛나는 재능이 있었지만 가부키는 전통적으로 가문이 중요한 예술이었고, 키쿠오에게는 안타깝게도 타고난 재능 이외에는 없었다. 한지로는 키쿠오에게 이 분야에서 가부키가문의 태생이 아니라는 것은 부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자신의 재능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슌스케와 키쿠오가 큰 무대를 앞두고 두려워할 때, 한지로는 슌스케에게 태어난 순간부터 배우의 아들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네 몸에 흐르는 피가 너를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키쿠오에게는 너의 몸이 지난 너의 노력을 기억하고 저절로 알아서 춤을 출 것이라 했다. 결국 이 공연은 큰 성공을 얻게 되고 소녀들의 인기를 가부키로 모아 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출처 : 東宝MOVIEチャンネル 유투브채널

 

 

큰 공연을 앞두고 부상을 입게 된 한지로가 대타로 자신의 아들 대신에 키쿠오를 지목하자 슌스케는 슬퍼하고 무대에 오르기 전 키쿠오의 불안과 압박은 절정에 이른다. 키쿠오가 결국 대타를 맡게 된 이 극은 <소네자키 동반 작별>이라는 작품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간장가게 지배인과 유녀 오하츠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내용이다. 손에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소네자키 숲으로 도피하여 새벽을 알리는 7번째 종소리를 들으며 나누는 대화이다. 궁지에 몰린 남주인공 토쿠베이가 우여곡절 끝에 오하츠를 찾아가고 그녀는 남몰래 그를 가게의 툇마루 밑에 숨겨준다. 사람들이 가십거리가 된 그들의 이야기에 분노한 토쿠베이를 발을 뻗어 저지하는 오하츠, 그런 그녀의 마음을 깨닫고 칼날처럼 그 발을 자신의 목에 가져다 대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인 극이다. 숨 막히는 긴장과 자신을 향한 압박을 이겨내려 부들부들 떠는 키쿠오를 찾아간 슌스케에게 키쿠오는 너의 피가 나에게 필요하다고, 그것을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정말 애처롭고 배우의 역기가 돋보이는 지점이었던 것 같다. 이 공연을 기점으로 슌스케는 집을 떠난다. 키쿠오의 오랜 여자친구 하나에와 함께. 

 

시간이 흐른 뒤 한지로는 당뇨합병증인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게 된다. 그러던 시기에 가부키는 대중의 사랑에서 멀어져 가고 이제는 시골에 초라한 가게에서 싸구려 조명아래 봐줄 수 없는 수준의 시골연극과 함께 간신히 이어가는 장르가 되어버린다. 작은 식당을 전전하며 가부키를 이어가던 키쿠오에게 어느 날 인간국보의 부름이 오고, 그렇게 그는 인간 국보의 명맥을 이어간다. 

 

#05 감독의 말

 

이상일 감독은 미디어캐슬 유튜브채널에서의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일본 젊은 세대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 줄 곳이 없다는 것에 대해 전체적인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전반적인 불안이 가족으로 대표되는 울타리가 없는 키쿠오에 대한 공감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한지로가 키쿠오에게 "가부키에서 부모가 없다는 건, 목숨이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또 역설적으로는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슌스케에게 공감한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인간의 호기심, 보이지 않는 감정과 무언가를 넘어서는 인간영혼의 힘을 영화적 체험으로 나타내고 싶었다는 감독 역시 어떤 경지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 진자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슌스케가 말할 때 진자 감독이 되고 싶다고 따라 속삭였다는 이상일 감독의 겸손함이 돋보이는 영상을 마지막에 첨부한다.

 

 

#06 제일 좋았던 장면

출처 : 東宝MOVIEチャンネル 유투브채널

 

적은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느낀 일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자면, "처연함"이다. 일본의 미(미)는 화려함과 기쁨, 풍요로움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보다는 좀 더 슬프고 춥고 잔인하리 마치 외롭다. 그런 처연한 아름다움이 일본의 단정한 아름다움의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일본의 국기가 하얀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일본의 아름다움과 이 영화가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완벽히 정렬되는 듯하다. 눈은 하얗고 하얀색은 공(공)을 의미한다. 공허함, 없음을 뜻하는 무(무)를 상징한다. 또는 죽음과 절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반대로 붉은색은 피, 열정, 생기가 넘치는 삶의 느낌을 뜻한다. 이렇게 공과 활을 오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자 예술일지 싶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키쿠오가 예술의 절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이 2번 나오는데 두 번째는 마지막 백로공연 때이고, 첫 번째는 한지로가 슌스케 대신 자신을 지정하여 그의 대역으로 경지에 이른 <소네자키 동반 작별>의 초연에서 막을 내린 장면이다. 막이 내려졌을 때 모든 소음과 빛으로부터 고립된다. 이는 마치 인간계로부터 승화된 경지를 표현하는 듯 키쿠오의 열반의 장면, 찰나의 바라본 어떤 풍경이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키쿠오의 인생은 그가 정하는 길이 아닌 마치 누군가에 의해 정해진 길을 가는 듯싶다.

 

#07 제일 좋았던 인물

 

국보 공개기념 특별방송에서 출연자들 인터뷰영상이 나오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얼굴이 너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뭔가 "너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중 한 명은 유난히 조금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무서운 느낌을 주는 인물이 있었다. 만 키쿠였다. 만키쿠는 키쿠오 이전에 인간국보로 지정된 인물로 "인간국보였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아"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한평 남짓한 여인숙에서 생을 마감하는 현실에서는 초라해도 예술세계에서는 어떤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이 배우를 연기한 다나카 료라는 배우가 계속 잔상이 남는 이유는 그가 연기한 예술의 이면, 그 공허함이 짙게 남기 때문일 것이다. 

“자네 가부키가 너무 미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지?”  순간 슌스케의 시선이 흔들립니다.
"그래도, 그래도 하는 거야. 그래도 매일 무대에 서는 게 우리 배우라는 사람들인 거겠지.”
<국보  상 >, 요시다 슈이치 

 

 

유튜브 영상 : 국보공개기념방송 

https://youtu.be/e0Vr9sjQmWY?si=bEcv-RrmsYBMvO2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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