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왜 글을 쓰는지에 생각해보았다. 순서가 뒤바낀것 같지 들릴지 모른다. 보통은 이유가 생겨서 글을 쓰니까. 그런데 내 경우는 써야지만 할것 같았다.안쓰면 미칠것 같은. 그래서 시작은 했는데 그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무말이나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것은 글이라고 할 수 있나. 다만 머리가 복잡했고 속이 답답했고 그동안 읽어놓은 글들이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그 단어들이 그 문장들이 서로 엉켜서 달라 붙고 춤을 추듯 자리를 바꾸는 동안 내머리 속에 어떤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작은 뇌의 용량이 넘쳐서 그것을 빼내어야 하는 시간이 온거다.
처음에 글이 삐져 나오려고 할 때 나는막연하게 기대를 했었다. 그래 나도 이제 그들 처럼 책을 쓸 때가 온거야.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들처럼 나도 언젠가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거라고 나는 옛날부터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고미숙처럼 말하듯 가볍게 정희진처럼 날카롭게 정곡을 찌르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켜놓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단 한 글자로 쓸 수 없었는데 며칠을 그렇게 공치고 난 후 내가 써놓은 글은 다섯살 정도 아이가 쓸 수 있는 글이었다. 참 재미있었다. 정말 즐거웠다. 또 보고싶다. 다다다다.
이렇게도 간절하지만 맘마,부부,엉엉 같은 옹알이나 해대고 있는 내가 짧은 단편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한 작가 때문일 것이다. 나 혼자만 좋아해서 아무한테도 안알려줘야지 했는데, 알아보니 한국에서 문창으로 가장 유명한 대학의 작법 교수님이었고 주변에 안읽은 사람이 없었고. 암튼 그래서 실망했던 그 작가. 김경욱이다. 등단했을 때 작품부터 다 가지고 있었는데 한동안 글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만난 반가운 이름, 왜 이제야 세상에 내놓으셨냐고 따져묻고 싶던 차에 책에서 그 절절한 이유를 전달받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잘나가는 작가의 책은 읽지 않았다. 몇 해를 꼬박 바쳐 야심 차게 출간한 신작이 2쇄도 찍기 힘들어진 때부터 였을까. 뻔한 글이나 쓰면서 뻔하지 않게 쓰는 법을 가르치고 다닐 때부터였을까.
일일이 찾아 읽을 필요가 없기도 했다. -김경욱, <너는 별을 보자며>
나는 글쓰기를 배워본적이 없는데 내가 글쓰기를 배우러 다녔다해도 마마부부보다 더 나은글을 썼을거라는 확신이 없다. 나는 반골기질에 제멋대로라 누가 이렇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하기 싫고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걸 보면 이렇게 하고 이랬던 인간이라 다시는 글을 쓰기 싫어질 것이라고 조용히 나를 예측해본다.
너무 잘 가르치지 말아야지, 가망 없는 다짐을 되뇌면서도 끝을 봤다. 살아 있는 모든 작가에게 경쟁심을 불사르며 죽은 작가의 글만 읽는 괴물이 되지 않으려고. 소설 창작 수업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
"고전만 읽어요. 요즘 소설은 못 읽겠어서."
말줄임표가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거울처럼 훤했다. - 김경욱, <너는 별을 보자며>
내가 올해들어 다짐한 일은 다른사람이 만들어놓은 어떤 것에도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말자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자신이 쌓아올리는 것보다 남이 쌓아올린 어떤 것을 평가하는 일이 너무 쉽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란. 지지할 필요도 좋아해줄 필요도 없건만 그저 팔짱끼고 앉아 남이 어렵게 만든 것에 이러고 저러고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한심해 죽겠다. 윌리엄 진서가 말했다. 무언가에 대해 서평을 쓸때는 그것에 대한 진한 애착을 가져야 한다고. 마치 평론가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혼자 좋아하지 않는 것이 무슨 계급이라도 되는 양 냉소하는 것이 서평이 아니다.
그 마음 알지. 너무 잘 알아 탈이지. 그러다 화장실에 앉아 네 글만 읽게 되는 수가 있어. 물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안다는 말은 함부로 내뱉으면 안되니. 소설 창작 수업에서는 더더욱.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세계가 낯설기 그지없는 얼굴로 돌진해오는 순간을 포착하는 게 소설이라면. 낯설기 짝이 없던 세계가 무섭도록 익숙한 얼굴로 돌변하는 순간을 목격하는 게 소설이라면. 소설이 무엇이든 소설가에겐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 다 알면서 도 모르는 척해주는 존재. 아무 말없이 책 한 권 건네주는 존재. - 김경욱, <너는 별을 보자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 버킷리스트 1위는 토지를 읽는 것이었지만 졸업한지 20년이 넘도록 나는 아직도 토지를 읽지 못했다. 나같은 산만한 사람은 드라마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를 좋아할수도) 나에겐 툭치고 빠지는 단편소설이 딱이다. 그 몇 페이지 안에 이야기들을 담으려 작가들을 얼마나 고민했을까? 한문장 한문장은 정말 소중하다. 그런 내가 예전과는 달라진 단편소설의 경향성을 모른체할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단편소설을 사랑하고 단편소설가들을 사랑한다.
"독창적인 글을 쓰는 방법은 둘 중 하나에요, 세상의 모든 책을 읽거나 어떤 책도 읽지 않거나."
나는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은 사람처럼 말했다. 지금이라면 어떤 책도 읽지 않는 사람처럼 말해야 할 테지만. - 김경욱, <너는 별을 보자며>
나는 오늘도 이 세상의 책을 다 읽을 것처럼 한권한권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결국 안쓰겠다는 이야기를 하기위해 쓰는 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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