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안에는 스무 개가 넘는 테이블이 있었지만, 어디에도 대화가 흐르지 않았다.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 없이 시선은 각자의 화면에 꽂혀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기묘한 풍경.같은 자리에 있지만, 가족은 함께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실감했다. 가족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반드시 '함께 있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디서부터 달라진 걸까. 가족은 왜 이렇게까지 변해버린 걸까. 이 책은 바로 그날의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이은경, <도파민 가족>서문 중에서
최근 유투브 프리미엄을 구독하면서 우리 세가족의 알고리즘이 통합되었다. 세 사람의 각기다른 취향이 하나로 묶여졌다. 주식을 하지 않는 남편은 별로 관심없었던 미국주식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열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관리와 관련된 법륜스님의 영상을 차분히 보게되었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총에 대한 관심으로 우리 세가족 모두가 에어소프트건의 매니아가 되버렸다. 서로의 관심사가 통합되고 한 테이블에 앉아 세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게된 건 유투브알고리듬의 잇점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스마트폰과 SNS 그리고 유투브,특히 쇼츠의 유해성에 대해 부정 할 사람이 없다. 특히나 이런 것들이 없던 유년시절을 지낸 지금의 부모 세대는 아이들이 모여 다방구를 하고 정글짐을 타지 않는 유년시절을 딱하게 여김으로 이것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우리는 부딪히고 떨어지고 다치면서도 그것 들을 통해 나쁘지 않은 뭔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떨어져도 며칠이면 회복이 되고 놀이터에서 친구와 치고 패고 싸워도 내일이면 다시 놀아야하는 이런 경험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일면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도 조금 다치고 긁히더라도 나와 다른 누군가와 부대끼며 커야한다는 사실을 부정할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태어나면서 부터 아이패드와 친한 이아이들을 보자면 그런 것이 없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아 보인다 아니 오히려 만나서 노는 것은 너무 성가신 일이다. 약속을 잡는 일에서 부터 그렇다. 예전에는 놀이터에 나가면 아이들이 모여있었으므로 약속을 잡을 필요가 없었지만 바빠진 요즘의 아이들은 각자의 학원스케줄을 피해 놀 수 있는 시간을 서로 맞춰봐야한다. 우스운 일화를 하나 이야기하자면 아이의 생일 파티를 위해 친구들과 서로 맞는 날짜를 맞춰보라고 했더니 일요일 밤 8-10시가 가능했다. 월수금은 수학 화목은 영어 토요일은 국어과학 수업으로 아이들이 서로 만나서 여유롭게 놀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숙제를 해야했으므로)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이렇게 자라도록 만들어 놓고 이제와서 하지 말라는 어른들이 짜증도 나겠지 싶다.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틈새시간을 통해 휴식과 재미를 한번에 잡을 수 있는 것이 가상공간인 것이다. 어찌하다 이렇게 되었을까.
서문에서 작가는 경치 좋은 곳에 여행을 가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한 가족을 묘사한다. 그들은 매우 '고요한'시간을 보내는데 그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 스마트 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 몇해동안 정교해진 알고리즘은 더더욱 각자의 세상에 갇히게 한다. 소통은 가상공간안에서만 공명한다. 오프라인에서 서로의 눈을 보며 비언어적 제스쳐를 통해 인지하는 대신 이모티콘과 콤마의 갯수를 세며 상대방을 파악해야한다. 깊게 소통할 수 없는 우리는 인간관계를 다시 정의 내려야한다.
그렇지 않고 살아온 세대가 그렇게 살아 온 세대에게 이것이 맞다 조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도 확신이 없는데다가 나조차도 지금 헤어나올 수 없기때문에. 그렇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조절하기 바라며 두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야 할 것인가.
아이는 그 장면들을 '많이' 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른다. 지금의 영상 환경은 아이의 뇌에 정보 과부하, 즉 인지 과부하cognitive overload를 유발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인지 과부하는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 이상의 정보를 짧은 시간에 받아들이면서 감정 처리 능력과 해석 능력 자체기 마비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이의 뇌는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조차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다. 감각은 넘치는데 해석은 부족하고, 반응은 빠른데 이해는 느리다.- 이은경, <도파민 가족> 본문 53페이지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부모와 떨어져 있는 불안감과 긴 시간 혼자 버스를 타는 것도 대견하고 그 시간동안이라도 자유롭게 쉬게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쥐어 주었는데. 아이는 서서히 유투브 알고리듬에 빠져 들어갔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더 깊숙히 알게되는 좋은 면도 있었지만 차라도 막히는 날이면 1시간동안 알고리듬 속에서 헤엄을 쳤던 아이의 뇌는 그 주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른 것에 흥미를 모두 잃었다.
눈과 귀는 분주했지만 마음과 머리는 텅 빈 상태. 공허함을 또 다른 짧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채우는 악순환에 빠진 아이의 뇌는 자극을 소화하지 못한 채 방치된다. 조용히 잘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잉 입력-무의미한 저장-저서적 소진'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영상을 보여준 부모가 스스로 해야 할 질문은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봤느냐'가 아닌 '영상 속 내용을 통해 무엇을 느꼈느냐'이다 - 이은경, <도파민 가족> 본문중에서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더 깊은 공부를 시키기 위한 노력보다 더 나은 학원 더 나은 선생님을 찾아다니기 위해 리뷰에 집착하고 더 나은 커뮤니티를 찾아서 헤맨다. 결국 아이가 해야하는 게 공부인데 말이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 반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아이와 성향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을 수도 있을텐데, 엄마인 나는 가장 좋은 곳으로 아이를 보내기 위해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했나요?" "후기가 더 좋은 데가 어디죠?" 누군가 지나간 길을 따라 걷는 것이 더 안전해 보인다. 하지만 그 길이 내 아이에게도 안전한 길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 이은경, <도파민 가족> 본문중에서
나는 아이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모든 데이터가 차단되는 소위 '공부폰'이라고 부르는 폰으로 바꾸기로 결정한다. 물론 아이의 동의를 구해서이다. 데이터 차단이 완전히 되어서 사실상 전화기와 문자밖에 되지 않는 폰의 통신료는 일반 요금보다 비쌌고 우리는 별도의 기기를 사서 써야 했다. 1년이 지난 지금되돌아보면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행복해 보이는 것을 sns에 올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족이 함께 바라보는 그 자체이라고 했다.
"나는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그 말이 아이에게 '사랑'으로 들리려면, 성과를 내지 않아도 사랑받는 경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때의 표정, 시험을 망친 날 먹는 따뜻한 밥 한 끼, 아무 말 없이 등을 쓸어주는 손의 온도. 아이의 도파민 회로는 바로 그 순간에 작동한다. 사랑은 속도가 아니라 밀도다. 결과가 아니라 관계다....뇌가 자라지 못하면 감정이 짧은 어른'이 된다.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고, 깊이 사랑하지 못한다. 위로를 받아본 적 없어서 위로할 줄 모르고, 실패를 견뎌본 적 없어서 넘어지는 법을 배우 지 못한 채 누군가는 성장한다. - 이은경, <도파민 가족>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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