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은/는’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나는’, ‘이 연구는’, ‘이러한 결과는’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이는 조사이기 때문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은/는’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사다. 단순히 주어 뒤에 붙는 조사가 아니라 대조·배제의 의미를 나타내거나 문장의 화제를 제시하는 보조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장이 길어지고 안은문장이 만들어질 때 ‘은/는’을 잘못 사용하면 문장이 어색해지기 쉽다.
1. ‘은/는’에는 대조와 배제의 의미가 있다
‘은/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대조다. 어떤 대상을 다른 대상과 대비하거나, 특정 대상을 선택하면서 다른 대상을 암묵적으로 배제하는 의미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보자.
나는 커피는 마신다.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커피는’은 단순히 커피를 마신다는 사실만 전달하지 않는다. ‘차나 술 등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커피는 마신다’는 대조 또는 배제의 의미가 포함될 수 있다.
다음 두 문장을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분명하다.
나는 사과를 먹었다.
나는 사과는 먹었다.
첫 번째 문장은 단순히 사과를 먹었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반면 두 번째 문장은 ‘사과는 먹었지만 다른 것은 먹지 않았다’거나 ‘다른 것은 몰라도 사과만큼은 먹었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따라서 특별히 대조할 의도가 없는 문장에서 목적격 조사 ‘을/를’을 무조건 ‘은/는’으로 바꾸면 글쓴이가 의도하지 않은 의미가 생길 수 있다. 보고서나 논문에서는 이러한 미묘한 차이가 문장의 의미를 바꿀 수 있으므로 더욱 주의해야 한다.
2. ‘은/는’은 문장의 화제를 제시한다
‘은/는’의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화제(topic)를 제시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부터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 것인가’를 독자에게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보자.
인공지능은 기업의 업무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 문장에서 ‘인공지능은’은 단순한 주어 이상의 역할을 한다. 글쓴이는 ‘이제부터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며 문장의 화제를 제시하고 있다.
주격 조사 ‘이/가’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누가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김 대리가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누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시하는 것이므로 ‘김 대리는’보다 ‘김 대리가’가 자연스럽다.
반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는 ‘은/는’이 자연스럽다.
김 대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김 대리는 우리 팀에서 AI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미 ‘김 대리’가 대화의 화제로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김 대리는’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은/는’과 ‘이/가’의 차이를 단순히 ‘주제와 주어의 차이’ 정도로 외우기보다는 ‘은/는’은 화제를 제시하고, ‘이/가’는 주어를 특정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제시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고 이해하면 실제 글쓰기에서 활용하기 쉽다.
3. 안긴문장에서는 ‘은/는’을 사용하기 어렵다
‘은/는’과 관련하여 비문이 자주 만들어지는 지점이 바로 안은문장과 안긴문장이다. 하나의 문장이 다른 문장 속에 들어가 하나의 문장 성분처럼 기능할 때, 바깥쪽 문장을 ‘안은문장’, 그 속에 들어간 문장을 ‘안긴문장’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보자.
나는 철수가 학교에 갔다고 생각한다.
전체 문장의 뼈대는 ‘나는 ~라고 생각한다’이고, 그 안에 ‘철수가 학교에 갔다’라는 문장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철수가 학교에 갔다’가 안긴문장이다.
이때 안긴문장의 주어에는 일반적으로 ‘이/가’가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문장: 나는 철수가 학교에 갔다고 생각한다.
맥락이 필요한 문장: 나는 철수는 학교에 갔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장이 무조건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철수는’이라고 하면 철수를 다른 사람과 대조하는 의미가 생기기 쉽다. 예를 들어 ‘영희는 모르겠지만 철수는 학교에 갔다’와 같은 맥락이 있어야 자연스러워진다.
다른 예를 살펴보자.
자연스러운 문장: 연구진은 AI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어색한 문장: 연구진은 AI는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안긴문장인 ‘AI가 생산성을 높인다’에서 특별한 대조의 의미가 없다면 ‘AI는’보다 ‘AI가’가 자연스럽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은/는’은 화제를 제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긴문장은 이미 더 큰 문장 속에 포함되어 있어 독립적으로 새로운 화제를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안긴문장 내부에서는 ‘은/는’보다 ‘이/가’가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고서와 논문에서는 이 문제가 자주 나타난다.
어색한 문장: 본 연구는 모바일뱅킹 이용자는 은행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석하였다.
수정: 본 연구는 모바일뱅킹 이용자가 은행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석하였다.
문장의 큰 화제는 이미 ‘본 연구는’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 안에 포함된 ‘모바일뱅킹 이용자가 은행의 수익성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안긴문장에서는 ‘이용자는’보다 ‘이용자가’가 자연스럽다.
‘은/는’이 반복된다면 문장 구조를 살펴보자
보고서나 논문을 퇴고할 때는 한 문장 안에 ‘은/는’이 여러 번 등장하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다음 문장을 보자.
어색한 문장: 본 연구는 모바일뱅킹 이용자는 거래 빈도는 은행의 수익성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이용자는’, ‘빈도는’, ‘수익성에는’처럼 ‘은/는’이 반복되면서 무엇이 문장의 중심 화제인지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이를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다.
수정: 본 연구는 모바일뱅킹 이용자의 거래 빈도가 은행의 수익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은/는’을 무조건 제거한 것이 아니다. 문장 전체의 화제인 ‘본 연구는’에는 ‘는’을 남겨 두고, 안긴문장 내부에서는 ‘거래 빈도가’, ‘수익성에’처럼 각각의 문장 성분에 맞는 조사를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 문장의 구조가 훨씬 선명해진다.
물론 한 문장에 ‘은/는’이 두 번 이상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비문인 것은 아니다. 대조의 의미를 의도했다면 여러 번 사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은/는’이 왜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은/는’을 사용할 때는 세 가지를 기억하면 된다. 첫째, ‘은/는’에는 대조와 배제의 의미가 생길 수 있다. 둘째, ‘은/는’은 문장의 화제를 제시한다. 셋째, 안긴문장에서는 특별한 대조의 의도가 없다면 ‘은/는’보다 ‘이/가’가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
글을 다 쓴 뒤 한 문장에 ‘은/는’이 여러 번 보인다면 잠시 멈추고 문장의 구조를 살펴보자. 특히 ‘A는 B는 C한다’와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면 안긴문장의 ‘은/는’을 ‘이/가’나 다른 적절한 조사로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작은 조사 하나를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문장은 훨씬 정확하고 읽기 쉬워진다.
참고문헌 : <비문은 쓰지말고, 썼거든 고치고 비문클리닉> 정제원지음
'읽고 보고 생각한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비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한 설명 (0) | 2026.09.04 |
|---|---|
| 비문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 생략과 불균형 (0) | 2026.09.04 |
| <차원이 달라 병>에 대해서 : The "It's on Another Level" Syndrome (0) | 2026.07.03 |
| 문지혁 <소설 쓰고 앉아 있네> 좋은 대화를 쓰는 방법 (0) | 2026.06.18 |
| 문지혁 <소설 쓰고 앉아있네> 좋은 플롯의 조건이란? (0) | 2026.06.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