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위험한 것, 깨진 것, 실패한 것, 괴로운 것, 아픈 것, 부서진 것, 망한 것, 죽은 것을 말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주니까요 뇌는 우리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만이 '의미 있다'고 여기고 이를 더 듣고 보고 배우라는 뜻에서 도파민을 분비합니다.
작가는 좋은 플롯의 조건으로 8가지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1. 독자를 끌어당기는 첫 장면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에 기반한 작법서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의 저자 리사크론에 따르면 첫 장면에 꼭 필요한 두 요소는 급박함urgency과 서스펜스suspense라고 합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 + 긴장감
이 두가지의 요소가 결합되면 독자가 빠져나가기 힘들다고 한다. 저자의 말로는 '독자의 멱살을 잡고 끌고 와야'한다.
2. 원하거나, 두렵거나
주인공이 될 자격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거나, 어떤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최초의 사건을 일으키는 자이며 그것때문에 생긴 지금의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욕망과 두려움이 있어야 변화의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3. 아픈 곳 때리기
작가는 사디스트 여야 한다. 주인공을 괴롭히고 아픈곳을 때리고 또 때려야 한다고 한다. 주인공이 변화할 때까지.
비극적 결함, 치명적 결함 은 필수적이다.
4. 점점 더 커지기
주인공이 뛰어넘어야 하는 허들의 높이는 점점 더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쌓인다.
주인공은 패배하거나 쓰러지지 않고 재도전하며 고통과 시련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5. 마지막에 뒤집기
'이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된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기분좋은 뒷통수를 때리자
6. 플롯 안쓰기
밖에서 부터 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밖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내면과 그 밑에 도사리는 내면적 문제에 대해 알려야 한다. 선제적으로 세세한 플롯을 만들어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좋은 플롯이란 사후적으로 생성된다고 한다.
7. 옛것을 새것으로
트위스트와 디테일을 통해 플롯에 작은 차이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8. 레퍼런스와 선행연구
완전히 새로운 플롯이란 없다. 누적된 결과물, 작가들의 좌절을 딛고 겸손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플롯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공부하며 이것이 무척 어려운 설계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잘된 설계라고 해서 꼭 반드시 좋은 글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지혁 작가를 처음알게 된 건, 초급 한국어라는 책을 통해서 이다. 당시 나는 한국어자격증을 취득한 직후 였는데 이 책을 본 순간 내가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어 자격증을 공부하며 한국어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전달할까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 라는 생각만 했지. 그 의미상 영어사용자에게 그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어떻게 전달해야 기억하기 쉬울지를 고민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인 문지혁은 한국어 선생님으로 재직할 당시 영어사용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 저변에 담긴 뜻과 그렇게 이야기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그래야하는 구나. 나는 작가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첫번째 소설의 초안을 쓰고 합평을 받으며 다시한번 좌절을 느꼈다. 문우들의 작품에 비해 너무나도 유아적인 문체와 구성이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 이게 나아질 수 있을까? 다시한번 생각해보며 도서관을 찾았다. 나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새로운 작법서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글쓰는 재능이라는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글쓰기는 본질적이고 노동이며 훈련이고 기술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수련하듯 글을 쓰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늘부터 다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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