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영어로 dialogue이다. 그리스 어원을 살펴보면 무엇을 통하여 혹은 무언가의 사이에서라는 뜻을 지닌 dia와 말하다라는 뜻의 어원인 logue의 어원 legein의 합성어라고 한다. 통과하는 발언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침습하여 우리를 변화시키는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좋은 대화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누군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동해야 한다.
2. 서로 다른 입장, 즉 갈등을 드러내야 한다.
의견이 어긋나는 지점, 불일치 항목, 숨겨져 있던 갈등을 발견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3. 정보를 보여주고 사건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정보는 대화 속 인물과 독자에게 공통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며 너무 직접적이지 않아야 한다.
엿들으려고 일부러 노력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알아야 한다.
4. 표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 느낌과 해석, 늬앙스를 포함하라.
5. 이런말들은 피하자
공허한말, 노골적인 정보제공, 감정의 과잉, 너무 통찰력있는 꿰뚫어보는 말,
소설에 있어 대화를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부분은 대화로 꼭 전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생생한 인물들과의 소통방법과 그 늬앙스 속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부분을 심어놓아야 한다.
문지혁 작가를 처음알게 된 건, 초급 한국어라는 책을 통해서 이다. 당시 나는 한국어자격증을 취득한 직후 였는데 이 책을 본 순간 내가 한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어 자격증을 공부하며 한국어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전달할까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 라는 생각만 했지. 그 의미상 영어사용자에게 그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어떻게 전달해야 기억하기 쉬울지를 고민해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인 문지혁은 한국어 선생님으로 재직할 당시 영어사용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 저변에 담긴 뜻과 그렇게 이야기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그래야하는 구나. 나는 작가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첫번째 소설의 초안을 쓰고 합평을 받으며 다시한번 좌절을 느꼈다. 문우들의 작품에 비해 너무나도 유아적인 문체와 구성이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 이게 나아질 수 있을까? 다시한번 생각해보며 도서관을 찾았다. 나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새로운 작법서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글쓰는 재능이라는 것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글쓰기는 본질적이고 노동이며 훈련이고 기술이라고 말한다. 매일매일 수련하듯 글을 쓰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늘부터 다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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