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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사랑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가난한 사랑을 미련 없이 선택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따분한 주제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 영화를 이렇게 신선하고 남다르게 느껴지게 만드는 걸까. 그래서 머 결국엔 기승 전외모라는 거 아냐. 가난한 남주가 크리스에반스처럼 생겼다면 당연히 남주를 선택하겠지라고 생각하기에는 이영화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여주인공의 시점을 따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셀린송감독의 두 번째 작품은 첫 번째 작품만큼이나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전개된다. 여주인공인 루시는 잘 나가는 매치메이커로 9 커플을 성사시킨 능력 있고 직업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삶을 산다. 그녀에게는 한때 너무 사랑했지만 가난한 배우지망생 남자친구 존이 있었고 기념일을 축하하러 가는 날 주차비 25달러 때문에 헤어지게 된다. 그녀는 가난이 싫고 가난한 남자 친구가 싫었으며 가난한 남자 친구를 싫어하는 자신을 가장 혐오했다.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그녀의 삶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연애시장의 트리플에이 격인 해리를 만나게 되고 첫 만남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구애해 오는 그를 받아들인다. 루시에게 해리를 싫어할 이유가 단 한 가지도 없었기에 해리와의 연애를 이어가지만, 중간중간 그녀가 심리적으로 무너져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그녀의 가장 내밀하고 연약한 부분을 존에게만 보인다. 결국 해리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존에게 돌아가 다시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셀린송감독은 사랑만은 여전히 자본에 지배당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루시는 데이트는 공이 들어가고 열심히 필요한 '일'이지만 사랑은 너무 쉽다고 그냥 하면 된다고 했다. 존도 역시 어떻게 이런 속물적인 나를 사랑하냐는 루시의 질문에 '너를 사랑하는 일은 그냥 너무 쉽다'라고 그래서 너를 보면 너와 함께 일생을 보내고 싶고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고 말한다.
흔히들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고 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때문이다. 사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사랑을 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에 사랑을 거두는 일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 된다. 사랑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오히려 그 마음이 불꽃처럼 퍼져나가는 것과 같이 사랑을 하는 것은 그냥 그렇게 매우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 영화의 첫장면이 매우 기억에 남는다. 왜 감독은 태초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것도 없던 시절, 몸을 가릴 가죽과 불을 지필막대기로 하루를 감사히 넘기던 시절에 풀꽃 한다 발을 꺾어 사랑을 고백하러 오는 사람의 마음과 지금의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뉴욕판 <이수일과 심순애>라고 생각하게 될지도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루시는 해리의 재력에 감탄할 뿐 그것을 욕망하지 않는다. 존에게 향하는 마음을 애써 거둬들이기 위한 고통스러움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일을 더 많이 이해해 주는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아닐까? 그리고 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반대성격에 많이 끌린다고 하지만 결국 관계가 깊어지면 알게 된다. 그 반대라고 여겼던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적확하게 자신 안에 있음을 말이다. 우리가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손실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고 카모풀라쥬 되어있는 자신과 같은 부분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가 인정하던 인정치 않던 그 부분은 내 안에 있을 것이다.

극 중에서 루시가 존을 다시만난 장면에서 둘이 같이 이야기하다 루시가 존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손으로 존의 얼굴을 따라 그리는 장면이 있다. 셀린송 감독은 이 장면을 '아이코닉 샷'으로 뽑았다. 그의 얼굴을 기억하기 위해 트레이싱하는 시적 행위로 그녀의 순수한 사랑이 그에게 닿기를 바라는 마술적인 순간이라고 했다.(다코타 존슨의 애드리브이었다는) 그녀는 또한 작품의 대사 중 존이 사랑은 고백하는 중에 "당신을 보면, 당신의 나이 든 모습(하얀 머리카락)이 보이고, 당신을 닮은 아이들이 보인다"라는 대사를 뽑았다. 주인공은 항상 '계산'을 한다고 하지만 이 대산에 모든 계산은 무의미해진다.
https://youtu.be/4AE6Nuzhi6o?si=ZmCpzK4b5vH3k32q
요즘 나이로 이른 시기에 결혼을 해 아이를 하나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사랑에 대해 아이에게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하지만 그것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언어를 넘어서고 계산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사랑은 공급자 입장에서는 알 수 없다. 너를 사랑해라고 수없이 외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나무에 아침이 되면 어둠과 스산함이 머물던 자리를 비춰주고 데워주는 햇살처럼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늘 그곳에 있었다고 나무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데. 네가 나한테 이러니?라는 말은 사랑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물론 대상이 잘못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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