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읽은 소설 중에 흡입력이 가장 강했던 소설이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주저없이 데미안을 선택할 것이다. 10대때 20대때 30대때 40대에 읽은 데미안은 그 시기별로 이해되는 수준들이 달라졌다. 10대 때는 싱클레어의 어린시절에 같이 분노하고 20대때는 데미안의 해결에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30대에 와서는 성인이 된 싱클레어의 방황에 함께 힘들어했고 40이 넘어 읽는 지금은 싱클레어와 에바부인의 사랑에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에바부인의 사랑은 무엇인가. 그리고 데미안이 초반에 말한 낮과 밤이란. 현실세계에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어느샌가 중년에 들어서면서 중간지대에 머무는것은 좋아한다. 극단적인 것에 조금씩 한발씩 거리를 둔다. 이것은 삶에서 체득된 지혜인지 수많은 경험으로 터득한 비겁함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색지대에 머물며 양 극단은 관조할때 그 두개의 극단에 내 안에 동시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더 젊던 시절 한쪽 극단에서 보이지 않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나를 가끔은 괴롭게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지만 이제야 알게 된게 어디야. 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추스르러 노력한다. 노련하고 세련되고 숙려깊은 성숙한 젊은이가 아니었음을 부끄러워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곳에 두 세계가 뒤섞여 있었다. 상반된 두 극단으로부터 낮과 밤이 나왔다. - <데미안> 본문 중에서
데미안이 두려워했던 밤의 세계. 그것은 낮과 예리하게 구분된 세계가 아니라는 것은 어느순가에 알게 된다. 빛과 그림자. 빛이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는 빛에 의해 생겨나는 것임을 알게된다면 밤과 어둠과 그림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기 망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헤세가 말하는 뒤섞인 두개의 세계. 그것은 사실 처음부터 하나였을 지도 모른다.
나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구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찾아왔다. 그 구원과 더불어 내 삶에 새로운 것이 등장했으며, 그것은 지금까지도 줄곧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데미안> 본문 중에서
우리가 시궁창에 잠겨 더이상 스스로를 구해줄 수 있을때 가서야 비로서 도움의 손길이 느껴진다. 사실 그 손길은 어디선가 나타난 것이 아닌지 모른다. 언제나 그 곳에 있어왔지만 우리는 느끼지 못했다. 필요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자만에 눈이 가려져있었을 수도 있다. 어디선가 등장한 듯한 구원. 그 이후에 우리는 깨달음과 변화를 얻게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거나 거듭나고 싶어한다.
사랑을 간구해서는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사랑을 요구해서도 안 돼요. 사랑은 자기 자신 안에서 확신에 이를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상대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당기지요. - <데미안> 본문 중에서
사랑은 깊에 경험해본 사람은 한번쯤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대상이 아닌 대상을 사랑하는 자신에게 향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이타심으로 보여지는 사랑의 속마음은 상당히 이기적이다. 모순적으로 이타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대상을 위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상처받아도 좋다는 확인과 용기이다. 그것이 상대를 자신에게 이끌어준다. 하지만 우리는 매우 연약한 존재이므로 이것은 사실상 지속불가능하다.
내게 중요했고 운명이었던 모든 것이 그녀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모든 생각으로 변할 수 있었고, 나의 모든 생각은 그녀로 변할 수 있었다. - <데미안> 본문 중에서
사랑의 최종단계,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최종의 단계를 나타낸 것일까. 사랑의 궁극의 지향점. 나는 싱클레어가 부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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