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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기록

<그 남자네 집> 작가 박완서의 글을 보고, 이 세상 맛이 아니던 구슬같던 그 추억

by BookSayu 2025.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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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던 후배가 땅 집으로 이사 간다고 하길래 덮어놓고 잘했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정작 어디다 집을 샀는지 동네 이름은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다. 

 

로 시작되는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고도 성장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 여성의 첫사랑의 회상에 따라 되돌아보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은 단순한 사라잉야기가 아닌 사회의 변화에 대한 묘사와 함께 주인공이 겪은 개인적 경험으로 더욱 생생하게 표현된다. 이 소설 속에서 박완서가 사랑했던 그 남자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박완서만의 부드럽고 관조적이며 담담한 필체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글에서 상상한 주인공@chat gpt



'무심한 것도 일종의 버릇인가 보다'

 

두번째 문장은 맘에 쏙 들었다. 문장이 맘에 들었다기 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항상 주변의 사람들을 살피고 챙기는 것이 완전히 체화된 사람처럼 나는 타인의 무신경함의 근원적 이유까지도 분석하고자 했다. 너무 생각이 많은 나에게 무심한 친구가 말했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그 말조차 상처가 되었다면 너무 유약한 멘탈이라고 비난을 받을까바 속속이 숨기고 있었던 관계에서의 민감함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나는 항상 무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무심한 사람들이 부럽고 존경스럽기 까지 했다. 그래서 무심해지기 위해 주변에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 아무도 없으면 아무 마음도 생기지 않으므로 나에게 무심은 최종적으로 다다라야 할 열반이자 이상향이다.

 

박완서의 담담한 말투와 정갈하고 솔직한 생각, 생각도 솔직할 수 있다. 때로는 생각조차 치장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나는 그런 투명하고 말그대로인 사람은 동경한다. 나는 죽어도 그렇게 될 수 없다. 나는 거짓말을 잘한다. 내가 소설을 쓰게된 큰 이유중에 하나이다. 내가 늦으막히 발견한 재주. 거짓말 하기. 그렇기에 나는 솔직하고 투명한 다른 소설가들과는 다른 소설을 쓸것이다. 나를 닮아 거짓되고 어설프게 치장된 무심한 소설, 그러면서도 언뜻언뜻 내 비칠 것이다. 그럼에도 숨겨진 내 마음을 알아줘.

 

<그 남자네 집>의 내용은 특별할 게 없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 서울로 올라와 생활을 하게 된 가족중 딸이 주인공이 되어 은행원을 만나 결혼하고 그럭저럭 살만한 생활을 한다. 아이 넷을 낳고 살던 중에 주택으로 이사간 후배가 초대한 한옥주택을 가던 길에 과거를 생각한다. 그 남자의 집. 그 남자를 떠올린다. 그 남자와 주인공은 특별한 깊은 관계는 아니고 어쩌면 오누이와 같은 느낌도 난다. 그남자가 자신의 집 근처에 이사온 날을 떠올린다. 너절한 것들을 들고오다 만난 그는 서글서글한 미남으로 지금의 안국동 근처의 어디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그 남자를 두번째 다시 만난 것은 전쟁 중이엇고 전쟁이 휩쓸고 간 가난뱅이의 삶을 살던 중이었는데 늙은 엄마와 마지막 아들인 그 남자만 남고 나버지는 큰형이 좌익이라 북쪽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주인공은 미군부대에 일자리가 생겼고 어머니는 이를 치욕스러워했다. 퇴근길에 만난 그는 주인공을 누나라고 불렀고 주인공은 '마음이 놓이기도 섭섭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남자는 매일 부대앞에서 자신을 기다렸고 짧은 기간 연애 비슷한 것들을 한다.

 

 

 

 

박수근 미술관에서 유홍준 미술관장의 해설 중  '여자들은 다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는데 남자는 우두커니 앉았거나 놀고 있는 게 특징'이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다시 언급한 것이 생각난다. 남자들은 변변한 일거리가 없어 여자들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던 시대. 전쟁 후 폐허가 된 나라를 저임금으로 일으켜 세운 아녀자들에게 우리모두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작가의 담담한 말투를 기억한다. 

 

"박수근이 표현한 그와 동시대의 여인들은 판화 속에서나 유화 속에서나 빈 광주리를 이고 있다. 그래서 귀로처럼 보인다. 귀로의 허기와 충만감, 귀로의 쓸쓸함과 조급증, 귀로의 피곤과 안도감, 그런 것들을 겪어보지 않고 어찌 읽어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미묘한 선이 생략되어 유화보다는 화강암에 새긴 오래된 부조처럼 보이는 작은 판화에서." -본문 50쪽

 

유복한 집에서 자란 그의 귀족스러운 취향을 음반사랑에서 알 수 잇다. 그런것들은 주인공의 열등감을 자극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그녀가 모르는 세계로 이끈다. 잘 모르는 베토번 9번 교향곡을 내려놓고 그녀가 알만한 '보리수' 가곡을 틀어주던 그 남자와 함꼐한 날들은 5월이 되어 온갖 꽃들을 피워내고 극성 스러운 여름이 되어 해방이 되고 서울에 다시 활기가 넘치게 된다. 화폐개혁과 인플레이션 등 우리가 국사교과서에서는 잘 알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은 소설에서는 친절하게 묘사해준다. '성한 집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당연히 살 집이 모자랐다' 는 글귀에서 당시의 참혹함과 황폐함ㅇ 느껴진다. 미국부대에서 나온 깡통과 보루바꼬로 (훌륭한 건축자재라고ㅠ.,ㅜ) 만든 버섯처럼 돋아단 하꼬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미군에게 돈을 갈취해 사는 사람들과 아이들. 그 남자는 한국전에 징집되어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까지 당하여 명예제대한 상이군인이건만 이제는 대학생 신분이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본문 96쪽 

 

전쟁 후 초토화된 집과 일자리, 농사 외의 생산적인 일자리가 없던 시정 사람들의 선망직업이었던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예닐곱 살 쯤 많은 은행원과 주인공은 결혼한다. 자수성가한 아들이 이 세상 최고인 줄 아는 낡은 세간 살이 자신의 집보다 작은 집에 시집을 간 주인공은 자신의 대타로 춘희를 취직 시켜주고 일자리를 그만둔다. 하숙집을 하는 친정을 떠나 청첩장을 그남자에게 전달하던 날 그 남자는 울음을 터트린다. 나도 운다. 

 

'그 동네를 돌고 또 돌았다. 그 남자의 부음을 들은 지 얼마 안 되고,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앞으로 그 남자보다 십년 이상, 아니 몇십 년을 더 살지도 모른다. 그 남자의 중년도 노년도 생각나지 않는다. 나에게 그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인 것처럼 그에게 나도 영원히 구슬같은 처녀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다. 우리가 신봉한 플라토닉은 실은 임신의 공포일 따름인 것을."

 

이 소설의 또다른 백미는 음식에대한 묘사이다. 새파란 쑥갓과 실파가 동동 뜬 준칫국, 누렇고 싱싱한 조기 알배기, 시뻘건 점액질이 흐르는 민어를 잡아다 애호박을 썰어넣고 보리 고추장을 풀어 끓인  민어찌개. 다만 이 모든 보고 배움은 영원토록 아들의 입맛으로 붙들어두려는 시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의 과정이다. 

마늘과 파를 곱게 다져 고운 고춧가루와 젓갈을 섞어 만든 다대기를 알맞게 절은 어린 오리 뱃속에 아주 조금, 찻숟갈로 반 정도만 넣어 차곡차곡 담고 간 맞춘 국을을 자박하게 부어 하루만에 익힌 오이소박이는 분홍빛 국물에서 싱그러운 오이 냄새가 강하게 나고, 오리는 새파랗고도 아삭아삭하고 새콤달콤했다. - 본문 131쪽 

 

칠월칠석 날 부친 밀전병의 묘사는 입맛을 돋군다. 애호박을 가늘게 채 쳐넣고 붙인 단순한 음식에도 들어가는 정성은 임박해서 짜낸 들기름과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반죽한 공들인 쫄깃한 전병의 경탄할 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 ㅋ 주인공은 시어머니를 남편에게 말할때 안타노 오카아상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고부간의 잔잔한 갈등묘사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점점 살림의 고수가 되고 무심한 줄 알았던 남편이 자신의 오래된 보물인 라이카카메라를 팔아 올케의 포목상을 차려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다. 완벽한 삶을 살던 중 부상을 당해 휴학을 한 그 남자(현보)의 소식을 듣고 마음이 먹먹해진다. 자신이 첫사랑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으니 얼마나 마음에 꽂혔을까. '다시 한 번 구슬 같은 처녀이고 싶은' 주인공은 긴 치마를 잘라 손수바느질해입고 그 남자를 만나러 간다. 

 

"봄이 되기 전에 속치마가 아른아른 비치는 춘추 비로드 치마도 싹둑 자르리라.
그 육감적인 치마를 입고 바람을 피우러 훨훨 이 답답한 집과 그날이 그날같은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리라."

 

지나다니면서 보던 비위생적이라고 생각했던 돼지껍데기 같은 것들을 그남자와 먹으며 작가는 '이 세상의 맛'이 아니라고 표현한다. 당시에 유행한 연재소설<자유부인>의 주인공인 오선영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듯한 주인공은 그런 천박한 이야기에 자신을 차별을 두고 싶어했다. '도둑이 제발 저린 걸 어떨 수가 없어 외면하고 경멸하는 것인지'알 수 없지만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변명하는 듯한 주인공이 귀엽기 까지 한다. 친정에가서 <보바리 부인> 찾아읽으며 자유부인보다는 고상한 머나먼 서양이야기에 탐미하는 장면도 재미있다. 시대의 아픔을 개인의 생활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이끌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역시 박완서이다 싶었다. 

 

 

작가의 글에서 상상한 주인공@chat gpt

"만일 그 남자를 못 만났더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넘겼을까. 그 살벌햇던 날, 포상이 지척에서 들리는 최전방 도시, 시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도시, 버림받은 사람만이 지키던 헐벗은 도시를 그 남자는 풍성에 띄우듯이 가볍고 어질어질하게 들어올렸다. 황홀한 현기증이었다. "- 본문 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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