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로 번역되어 발간된 베벌리 클락의 책 <실패에 대하여>의 원서의 제목은 How to be a Failure이다. 실패가 되는 법. 실패가 되고 싶은사람이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실패가 무엇인지 반면에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의라는 것이 과거부터 지금 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고정적인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이책에서는 호모에코노미쿠스와 호모렐리지우스를 정의하며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바라보아야하는지 조근조근히 알려준다.
성공과 실패, 21세기에서 말하는 좋은 삶이란?
Why was I doing it? What was the point of it? When would it be over?
회사에 출근하는길에 내가 왜 이렇게 살고있지? 언제까지 이짓을 해야하나? 하는 질문이 들게 되면,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좋은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우리안에 이미 알고있는 좋은삶에 관한 어떤 부분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삶과 어떤 '대척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어스름픗하게 알게 된다. 미디어에서는 주어진 일을 멋지게 해내고 수행하여 인정받고 승진하고 끊임없이 오르면 유퀴즈에 나오는 누군가처럼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성공적인 사업가의 전략을 공부하고 그들의 습관을 따라가야 할 것 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이유이다.
분명 이것보다 나은삶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지 못하는 어떤 부분에 대해 집요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There are better ways of living, but they can only emerge if we resist the obsession with cultivating success and instead pay attention to what it means to fail under such a system.
영화로 유명한 <아메리칸 사이코>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브렛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I was living like Patrick Bateman. I was slipping into a consumerist kind of void that was supposed to give me confidence and make me feel good about myself but just made me feel worse and worse and worse about myself.
나는 패트릭 베이트먼처럼 살았다. 자신감을 주고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줄 것 같았던 소비주의의 공허함에 빠졌다. 내 기분은 오히려 바닥을 내리쳤고, 자존감도 더 떨어졌다.
- Bret Easton Ellis, American Psycho(1991) novelist
21세기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은 내보일 물질적 증거가 없으면 실패자로 낙인 찍히기 쉽고 사소한 이유로 타인의 판단 대상이 된다. 그래서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을 그들의 연봉으로 이야기하는 소위 그레이딩 작업이 '금융화'된 사회에서는 가장 손쉽게 그사람을 판단하는 도구가 된다.
한편 경제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 밑면에는 그 생각을 부추기는 정치적 요인도 무시할 수없다.
인류는 ‘철저하게 시장 행위자이며 언제나 어디서나 오직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형상으로 비친다. 경제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간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이런 식으로 걸러지다 보니, 우리가 정치적 결정으로 세워진 사회에 산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그렇게 쌓아올려진 세계는 소비로 이루어진 생활방식으로 나타난다.
Living in a post-industrial age, consumption has become the organizing principle for life, and this makes even more central ‘the endlessness of the labouring process’ In-built obsolescence of objects and the vagaries of fashion mean that ‘our whole economy has become a waste economy’
저자는 사막에 가 중간에서 차가 고장나 완전히 고립되어있던 기억을 말한다. 사막을 지나가는 독수리에게 우리는 성공한 누군가고 큰집을 가진 누군가도 부모를 잃은지 얼마안된 누군가도 아닌, 그저 하나의 먹잇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답과 함께 깨달음이 머리를 스친다. 당신의 삶, 기쁨, 슬픔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다. 레인의 깨달음은 혹독한 자연의 매정함을 확대하여 개인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하는 주장이 아니다. 자연 바깥의 세상에서 인간의 미미함을 인정함으로써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를 올바른 곳에 배치하려는 것일 뿐이다 - 본문중에서
우리는 가끔 우리의 슬픔과 기쁨이 세상의 중심인듯 행동하지만, 이렇게 사막에 고립된 경험을 하게 되면 개인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내가 그토록 고뇌하던 문제는 얼마나 사소로운 것인지를 알게 된다.
“With this knowledge comes the realization that you–your life, joys, and sorrows are not the centre of the world. For Lane, this is not a statement that extends the harshness of an unforgiving landscape to a judgment on the individual's worth. Acknowledging our insignificance in the context of the rest of the natural world puts the things that trouble us in their rightful place.”
일상의 풍성함, 일상으로 보는 우리의 모습 - 스탠리 스펜서의 그림
스펜서는 작은 마을에서 나고자라 자신이 자란 '천국의 마을'을 주제로 기쁨과 희망을 그린 작가이다. 동네 사람들이 즐겁게 일상을 사는 모습을 소박한 배경으로 나타냈다. 하지만 그는 이 일상을 미화하지만은 않았다. 그림 한점에는 십자가를 진 그리스다가 잘 정돈된 단지안을 지나간다. 주변에서 일하는 인부의 얼굴에는 증오와 혐오가 드러나있다. 그의 그림은 삶의 풍부한 그리고 좋고 나쁜일, 기쁘고 끔직한 모든 경험을 담아내어 일상이 주는 다양한 경이감을 전달한다.
걷기의 비밀
걷기는 자기 자신과 일상적 세계를 나란히 두는 연습이다. 걸을 때 우리는 한 장소에서 땅을 디딘다. 주변을 보지 않은 채 달리기 시합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세계의 일부라고 스스로 느끼도록 천천히 박자를 맞춘다. 이런 식으로 걸을 때 주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레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관찰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이곳의 일부다’. -본문중에서
걸으면서 세상의 일부가 된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았다. 걸으면 의미가 된다. 니체는 암말기에 가서 알게된 현실의 행복, 극작가 데니스 포터는 잠들기 직전 창문밖에 시든 꽃을 보며 느낀 모든것의 현재성에 우리는 지금부터 참여할 수 잇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도 그리고 억만겹에 시간이 쌓여도 사라지지 않은 이 세상에서 순간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은 슬픈일이다. 지금은 모습은 지난날의 나에게 내려진 심판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살아온 모습 실패와 상실의 모든 상처를 안고있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 나의 경험의 전체로 나를 안아들이는 일이 필요하다.
“That relationship is a continual process of making, unmaking and remaking suggests there is nothing certain about its outcome. Just because I am suggesting we need to acknowledge the way in which we are made by relationship does not mean that the relationships we enter into will always be good or will always enable the flourishing life. That would be naive in the extreme. The promise of homo religiosus is that by making central the role of connection in shaping us as individuals we can also acknowledge the need to think seriously about the conditions necessary for creating good relationships.”
관계는 세우고 무너지고 다시 세우는 끊임없는 과정으로, 확실하게 정해진 결론이 없다. 물론 인간이 관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앞으로 맺을 인연이 모두 바람직하거나 풍성한 삶을 가능케 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순진한 생각이다. 다만 이 가능성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이끈다 - <실패에 대하여>, 베벌리 클락 저/서미나 역
'책과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nsumed>패션산업의 식민주의 그리고 소비자주의(1) (0) | 2024.03.04 |
---|---|
<원더 Wonder> 옳바름보다는 친절을 택하라 원더 소설원작 영화 추천도서 (0) | 2024.03.01 |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책소개, 저자소개, 팟캐스트 (0) | 2023.09.12 |
<문학서울> 몽상가들, 서울이 문학이 되는 밤, 이우 (0) | 2023.07.19 |
<서울 이데아> 이우 장편소설, 서울의 맨얼굴, 책소개, 줄거리, 서평 (0) | 2023.07.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