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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듀한화 <THE CUBISTS>

by BookSayu 2026. 6. 15.

 

 

이번 달 개관한 <더 큐비스트 : 시각의 혁신가들>을 관람하고 왔다. 이 전시회는 퐁피듀한화의 첫번째 전시회로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 8개의 섹션과 한국섹션 한개를 조화롭게 조명한 전시회였다. 입장 전부터 기대햇던 것은 입체파의 창시자라 일컫어지는 브라크의 작품이 많이 왔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위의 작품은 조르주 브라크의 <레스트크의 고가교>라는 작품으로 1908년대 초반에 그려진 작품이다. 큐비즘과 야수파적인 성향이 같이 나타나는 이 작품은 가까운 시점에 구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며 평면에 가까운 기하학적인 형태를 황토색으로 채색하여 표현햇다. 식물과 하늘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브라크의 구축적 접근의 시작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마리로랑생의 <아틀리에와 그의 친구들>,1909이다. 입체파의 여성작가로 떠오르는 것은 단연 마리로랑생이다. 그녀는 피카소와 브라크와 교류하며 입체파 그룹에 참여했지만 부드러운 곡선과 색채로 그녀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오른쪽 아래에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화가 자기자신이라고 한다. 자신이 이 사교모임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라도 한듯 밖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기타를 든 여인(왼쪽)


♪ 조르주 브라크의 《기타를 든 여인》은 종합적 큐비즘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먼저 화면을 바라보면, 모자를 쓴 여성이 기타를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나는데요. 하지만 인물의 얼굴과 몸, 기타의 형태는 하나의 시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여러 조각난 면과 선들로 분해되어 서로 겹쳐져 있습니다. 마치 화면 속 이미지가 천천히 조립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죠.

이 작품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브라크가 만들어내는 ‘가짜 현실 효과’입니다. 화면을 자세히 보면 신문 조각이나 나뭇결 무늬가 실제로 붙어 있는 콜라주처럼 보이는데요. 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실제 종이를 붙인 것이 아니라, 모두 회화적으로 그려낸 ‘가짜 콜라주’, 즉 트롱프뢰유 효과입니다. 브라크는 회화 안에서 실제와 환영이 뒤섞이는 이중적인 시각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죠.

또한 가까이 다가가 보면 화면 표면이 거칠고 입체적으로 느껴집니다. 브라크는 물감에 모래를 섞어 화면에 부조 같은 질감과 촉각적인 효과를 더했는데요.
덕분에 이 작품은 단순히 보는 회화를 넘어, 마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물성을 갖게 됩니다.

특히 기타 부분에 표현된 나뭇결도 흥미롭습니다. 얼핏 보면 실제 나무 조각처럼 느껴지지만, 이것 역시 실제 재료가 아니라 그려진 이미지입니다. 브라크는 장식가들이 가구나 벽면에 나무 무늬를 흉내 낼 때 사용하는 빗 모양의 도구를 이용해 이러한 ‘가짜 나뭇결’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무늬를 통해 화면 속 기타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죠.
화면 아래쪽을 보면 ‘LE REVEIL(르 레베이)’라는 신문 제목 일부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일부 글자가 잘려 나가면서, 동시에 프랑스어 ‘LE RÊVE(르 레브)’, 즉 ‘꿈’이라는 단어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브라크는 이렇게 이미지와 언어 사이에서 여러 의미가 겹쳐지는 시각적 언어유희를 만들어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화면 속 곡선들입니다. 기타의 둥근 몸체를 암시하는 곡선은 동시에 여성의 어깨와 몸의 실루엣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악기와 인물의 형태가 서로 자연스럽게 섞이며 화면 전체에 부드러운 리듬감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브라크에게 음악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바이올린이나 기타 같은 악기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음악의 리듬과 회화의 구조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습니다. 《기타를 든 여인》 역시 단순히 한 여성 음악가를 묘사한 그림이 아니라, 음악과 언어, 현실과 환영이 서로 겹쳐지는 큐비즘적 실험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르낭 레제, 바느질하는 여인,1910
수잔 뒤샹, 개와 함꼐 있는 소녀,1912
로베르 들로네 작품

 

체코작가 프란티세크 쿠프카 작품, 노란색의 수직구성,1913
피카소, 소녀의 머리, 1913
장 푸니 작품, 이발사 1915, 출생 핀란드, 프랑스 작가

 

 

레오폴 쉬르바주, 프랑스 화가
파블로 피카소 아를르캥과 목걸이를 한 여인, 1917

 지향 이신자는 1950년 후반에 실험적 염색작업을 통해 전통섬유공예가 주류였던 화단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얼마전 국립미술관 과천에서 진행된 이신자의 전시를 보며 기암을 토했던 기억이 있다.

 

Emerging in the late 1950s through experimental dyeing practices, Lee Shinia brought new vitality to an art scene then dominated by traditional textile crafts such as embroidery. She consistently expanded the textile medium beyond the realm of craft into the language of fine art, playing a significant role in introducing contemporary Korean textile art to the international stage.
Recollection (1959) takes a tree as its motif, dividing the trunk and branches along horizontal and vertical axes before recomposing them into a structured composition that reflects a Cubist sensibility through planar segmentation and overlapping forms. Delicate printed lines flow across the surface like wood grain or underground water veins, emphasizing the materiality of the textile, while the contrast between a luminous circular form and the dark silhouette of the tree creates a tension between abstraction and representation. The overlapping, fragmented viewpoints suggest a reconfiguration of Cubist and Art Informel tendencies within the textile medium.

Korean War, Lee su-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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