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시런의 주장을 담은 논픽션 《I Heard You Paint Houses》를 원작으로 한 영화 <아이리쉬맨(The Irishman)>은 제작 단계부터 세기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연출하고,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라는 이름만으로도 압도적인 배우들이 한 화면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영화 팬들에게는 기적 같은 조합이었다. <대부> 시리즈 이후 마피아 영화를 상징해온 배우들과 감독이 다시 모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종의 세대적 귀환처럼 느껴진다.

숙청의 시대, 미국의 초상
<아이리쉬맨>은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숙청의 시대를 살아간 미국 사회의 초상을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관객은 20세기 중반 미국인들이 품고 있던 불안, 충성, 그리고 배신의 공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프랭크 시런의 시선은 한 개인의 회고담이자, 냉전시대 미국이 품었던 권력과 폭력의 그림자를 동시에 비춘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리지만, 그 안에는 늘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19세기 말에는 아일랜드계, 20세기 초에는 이탈리아계, 1920년대에는 유대인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그러나 미국 주류 사회를 이루던 개신교 백인들은 가톨릭 신앙을 가진 이민자들을 배척했다. 가톨릭에 대한 불신은 종교적 이유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위협으로도 해석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지역 사회의 이민자들을 보호한 세력이 바로 마피아였다. 공권력이 무관심하던 시절, 마피아는 이민자들의 권리와 생존을 ‘비공식적 방식’으로 보장했다. 영화 <대부>에서처럼 사소한 분쟁부터 정치적 거래까지, 마피아는 미국 도시의 또 다른 정부처럼 기능했다.

1920년대 금주법(Volstead Act)은 미국 사회를 바꾼 결정적 사건이었다. 술을 금지하는 법이었지만, 그 결과는 역설적으로 마피아의 황금기를 열었다. 알 카포네 같은 유명 마피아가 불법 주류 유통을 장악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정부가 다루기 꺼리는 영역, 즉 폭력·도박·유흥 등 사회의 ‘그늘진 수요’를 처리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 시기 마피아는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경제와 정치에 깊이 뿌리내린 ‘대체 권력’으로 성장한다.
<아이리쉬맨>이 다루는 시대에는 정치와 범죄가 얽혀 있었다. 케네디 가문은 마피아와의 커넥션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였고, 그의 할아버지가 주류 사업을 했다는 사실은 그가 마피아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음모론으로 이어졌다.
1961년 ‘피그스 만 침공사건(Bay of Pigs Invasion)’에서 미국이 쿠바에 실패한 이후, 쿠바 내 마피아 이권과 케네디 행정부 간의 갈등이 더욱 복잡해졌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역사 속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트럭 노조와 라스베이거스의 그림자
<아이리쉬맨>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개발 과정에서 트럭 노조의 영향력을 암시한다. 실제로 1950~60년대 마피아는 운송·노동조합을 통해 정치권과 연결되어 있었다. 알 파치노가 연기한 ‘지미 호파(Jimmy Hoffa)’는 전미트럭운전사노조(Teamsters)의 전설적인 위원장으로, 당시 미국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엘비스 프레슬리 못지않은 대중적 영향력을 가졌다. 노동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던 20세기 초중반, 노조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피아와 손을 잡는다. 하지만 그 결탁은 권력의 욕망으로 변질되고, 결국 호파의 실종이라는 미스터리로 귀결된다. 영화의 원작 제목처럼, “당신이 집을 칠한다”는 말은 피로 벽을 칠한다는 은유다. 프랭크 시런은 자신이 지미 호파 실종 사건과 라스베이거스 자금 회수 등 여러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회고는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미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증언하는 범죄자의 고백이다.
늙은 마피아의 초록색 관
영화의 마지막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프랭크 시런은 노년의 고독 속에 남겨진다. 한때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권력의 그림자 속을 살아온 남자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늙어버린 자신을 마주한다. 초록색 관을 고르는 장면은 그가 아이리쉬 출신임을 상징하는 동시에, 인간의 허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죄와 벌의 무게조차 잃은 노년의 공허함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연상시킨다.
결국 이 영화는 범죄의 미학이 아니라, 양심도 인간성도 버린 인간의 말로를 기록한 역사적 비극이다.

It’s what it is.
프랭크 시런이 남긴 마지막 말처럼, “그건 그런 거야(It’s what it is)”라는 문장은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 말 속에는 회한도, 구원도, 변명도 없다. 그저 한 세대를 지배했던 폭력의 세계가 흙으로 돌아가는 담담한 수순만이 남는다. <아이리쉬맨>은 마피아 영화의 전설들을 불러 모은 ‘은퇴작’이자, 미국 이민사와 범죄사, 그리고 인간의 양심을 탐구한 시대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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